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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모양이 마치 욕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아직 사태 파악이 되지 않았는지 한쪽 눈을 찌그러뜨리고 좌중을 훑었다. 경찰의 행동에 봉구 씨가 다가가 느릿느릿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경찰이 봉구 씨의 설명에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뒤로 젖히며 한숨을 내쉬었다. 주름이 이마로 쏠리고 목젖이 크게 부풀었다.“이 사람들이 지금 장난하나. 당신들 허위 신고가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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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당마루
2019.08.07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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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기사에게서 전화가 걸려 온 건 숙자 씨가 마트에 가기 위해 아이를 안고 버스에서 이리저리 뒤뚱거리고 있을 때였다. 앉을 자리도 없고 자리를 양보해 주는 사람도 없어 비지땀을 쏟고 있는데 낯선 번호가 스마트폰 화면에 나타났다. 그러든가 말든가 아이는 장난감 막대를 사탕처럼 빨고 있었다. 숙자 씨는 찟찌, 하며 아이 엉덩이를 냅다 갈기고는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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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7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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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장 한켠 유골 수거 창구에 유족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유족들은 들어갈 때와는 달리 그저 하얀 뼈 덩어리만 나오는 걸 허망한 눈으로 지켜봤다. 한 줌의 재로 변한 것을 보는 순간, 시신을 담은 관을 보고서는 그렇게 서럽게 울던 사람들도 유골 앞에서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슬픔이라는 것도 유형의 무엇이 있을 때 성립하는 것이지 먼지밖에 남아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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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7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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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들의 갑작스러운 태도변화에 당황한 것은 영업 사원이었다. 다 잡은 물고기 낚싯바늘에 주둥이 찢어져 놓치는 꼴이었다. 남자는 숙자 씨가 처음부터 맘에 걸렸는데 기어이 일을 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표정에는 그 어떤 동요도 드러나지 않았다. 아니 숙자 씨의 말이 당연한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네, 그렇고말고요.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고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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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7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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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는 찢어질 듯한 눈꼬리로 봉구 씨 형제와 헤어젤을 번갈아 노려봤다. 봉구 씨가 그녀를 외면하며 슬그머니 시선을 창 쪽으로 던졌다. 한동안 봉구 씨의 옆모습을 노려보던 숙자 씨는, 그러다가 이내 온화한 표정으로 돌아오며 미소를 지었다. 숙자 씨가 헤어젤을 향해 겸허하게, 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육신이 흙에 묻히고, 바람에 묻히고, 불에 묻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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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7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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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뭐……”숙자 씨가 말을 채 맺기도 전에 영업사원이 끼어들었다.“고인을 흠모하며 기리는 상품들이지요. 화장한 다음 유골을 강이나 바다에 뿌리는 것은 이미 법으로 금한다는 것은 다 아시지요? 그래서 요즘은 추모공원에 모시거나 요 앞, 화장장 동산에 뿌리는 게 일반화되어있습니다.”봉구 씨는 대기실 매점에 진열된 각종 유골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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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7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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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전 봉구 씨 가족은 아버지의 장례식을 마치고 화장장(火葬場) 대기실에서 아버지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화장장은 고속버스터미널 대합실을 연상하게 했다. 고로(高爐)마다 일련번호가 매겨져 있는 것이 노선별 승차 게이트 같았고, 손바닥만 한 투명구(透明口)를 사이에 두고 오열하는 유족은 시골로 내려가는 아버지를 배웅 나간 가족들과 다름없었다. 다만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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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7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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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는 선천적 말더듬이였다. 거기다가 성질도 급했다. 성질이 급해서 말을 더듬는 것인지 말을 더듬어 성질이 급해진 것인지 까닭은 알 수 없으나 이를 가장 안타까워하는 사람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말이 사람 잡네, 라며 말더듬이 때문에 혹여 막내가 엇나갈까 봐 걱정을 달고 살았다.어느 해인가 막내는 친구들과 말다툼을 하다 울며 집에 들어온 적이 있었다. 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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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7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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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뭐냐.”숙자 씨가 빈정거렸다. 뒤를 돌아보자 숙자 씨는 턱짓으로 방문 쪽을 가리켰다. 옥함은 뚜껑이 반쯤 열린 채 방문과 벽 사이에 아무렇게나 끼어 있었다. 봉구 씨는 무릎걸음으로 허겁지겁 다가가 옥함을 집어 들고 속을 살폈다. 하지만 정작 있어야 할 구슬은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가 머리에 빨대를 꼽고 골을 쪽, 팔아버린 것 같았다. 허탈했다. 침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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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7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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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려 나간 사이 거실 장식장 위에 잠시 올려 놓아두었던 구슬이 감촉같이 사라져버렸다. 처음에는 다른 곳에 놓아두었으려니, 이 방 저 방 건성으로 찾아보았다. 보석함 정도의 옥함이라 어디든 둘 수도 있고, 눈에 금방 띄지 않을 수도 있었다.봉구 씨는 거실 중앙에 어정쩡하게 서서 구슬 둘만 한 곳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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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7 14: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