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건 뭐냐.”

숙자 씨가 빈정거렸다. 뒤를 돌아보자 숙자 씨는 턱짓으로 방문 쪽을 가리켰다. 옥함은 뚜껑이 반쯤 열린 채 방문과 벽 사이에 아무렇게나 끼어 있었다. 봉구 씨는 무릎걸음으로 허겁지겁 다가가 옥함을 집어 들고 속을 살폈다. 하지만 정작 있어야 할 구슬은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가 머리에 빨대를 꼽고 골을 쪽, 팔아버린 것 같았다. 허탈했다. 침입자는 구슬만 빼 가고 옥함은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치고 간 게 틀림없었다. 경우 없는 침입자였다.

옥함이 놓여있던 자리 옆에는 아이가 가지고 놀다 내팽개친 삐에로 오뚝이가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봉구 씨를 노려보고 있었다.

구슬이 사라졌다는 소식에 가장 먼저 달려온 사람은 막내 봉길 씨였다. 싸늘한 바람 속을 급히 뛰어온 탓인지 집 안으로 들어온 봉길 씨의 검은 테 졸보기안경에 던킨도너츠 같은 김이 서렸다.

“이, 이……, 이건 납치야! 아, 아니 유기!”

봉길 씨의 말더듬이가 평소보다 훨씬 심했다. 왜가리처럼 고개를 쑥, 빼고 대가리를 흔들며 거칠게 ‘유기’를 외치는 봉길 씨. 봉구 씨는 그런 그를 한참이나 멍하니 바라봤다.

숨을 몰아쉬는 봉길 씨는 처음에는 개처럼 화난 표정을 짓다가 이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뱉는 순간에는 넋 빠진 얼굴로 변해갔다. 표정 변화 때문인지 슬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표정 변화는 생각과 말의 시차 때문이었다. 막내는 언제나 하고 싶은 말을 몇 초 동안 입 안에 잔뜩 눌러놨다가 대문니 사이로 찍찍 침을 뱉듯 갑자기 뱉어내는 버릇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표정이 말하는 상황과 늘 달랐다. 생각은 한참이나 앞서 갔는데 뒤따라오는 말은 생각에 미치지 못했다. 봉길 씨가 아무리 심각한 이야기를 해도 그리 심각하게 들리지 않은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의 말에 숙자 씨가 어이없다는 듯한, 그래서 우스워 죽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봉길 씨 표정이 분기로 탱천했다.

“며, 명백한 유기. 겨, 경찰 불러.”

봉길 씨는 한참이나 입을 벌리고 며, 며를 더듬거리더니 명쾌하게, 그러나 심하게 말을 더듬으며 사건을 ‘유기’로 규정지었다. 그러니까 경찰을 부르는 게 당연하다는 거였다. 그의 명징한 규정 앞에서 이번에는 봉구 씨가 넋 빠진 표정을 지었다. 구슬이 사라졌는데 납치라니, 유기라니. 머릿속에서 왜가리 세 마리가 온 힘을 다해 뇌를 콕콕 쪼아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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