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는 찢어질 듯한 눈꼬리로 봉구 씨 형제와 헤어젤을 번갈아 노려봤다. 봉구 씨가 그녀를 외면하며 슬그머니 시선을 창 쪽으로 던졌다. 한동안 봉구 씨의 옆모습을 노려보던 숙자 씨는, 그러다가 이내 온화한 표정으로 돌아오며 미소를 지었다. 숙자 씨가 헤어젤을 향해 겸허하게, 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육신이 흙에 묻히고, 바람에 묻히고, 불에 묻히는 것은 바로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것이에요. 인디언들이 왜 풍장을 하겠어요. 육신을 자연에서 소멸시키는 것은 천계에 이르는데 유리하다는 데서 비롯된 것이에요.”

숙자 씨는 말을 하면서도 어릴 적 시골집 마루에 차려진 할머니의 상방을 떠올리며 진저리쳤다. 상방은 일 년 내내 그녀를 괴롭혔다. 밤에는 할머니 상방이 무서워 오빠를 데리고 화장실을 다녀왔고, 그나마 오빠가 잠든 새벽녘에는 혼자 요의를 참으며 아우아우, 거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떤 때는 상방 천을 찢고 할머니가 걸어 나오는 꿈에 놀라 화들짝, 잠에서 깨어나기도 했다. 탈상 때까지 상방은 일 년 동안 마루에서 향내를 피우며 그녀를 괴롭혔다. 피붙이인 할머니도 이럴 진 데 생판 남인 시아버지를, 일 년에 명절 때나 한두 번 봤던 시아버지의 유골을 무슨 정이 있어 집안에까지 들여놓고 함께 잠을 자고 밥을 먹는단 말인가. 숙자 씨는 정말이지, 무덤 속에서 함께 누워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구슬로 만드는 것만큼은 막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형제들이 저렇게 나오는데 무턱대고 반대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저 귀 얇은 형제를 어떻게 해야 하나, 영업 사원의 저 요망한 주둥이에 어떻게 레미콘을 들이부어 입을 막아 버려야 하나, 숙자 씨는 그런 생각을 하며 말을 계속했다.

“육신을 구슬로 가둬버리면 아버님은 영원히 구슬로만 남아있어요. 박물관 유리관에 갇힌 미라처럼, 아시겠어요? 아버지를 훨훨 날려 보내 드려야 해요. 천계에 이르는 길을 터 드려야 한다구요.”

숙자 씨는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았다.

“맞아. 바람, 흙……”

숙자 씨의 말이 끝나자 봉구 씨가 나직이 그녀의 말에 맞장구쳤고, 팔봉 씨도 영업사원이 말했을 때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는 숙자 씨의 말에 목을 길게 빼고 느릿느릿 끄덕였다. 왜가리가 두 마리 더 늘었다. 숙자 씨가 흐뭇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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