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 봉구 씨 가족은 아버지의 장례식을 마치고 화장장(火葬場) 대기실에서 아버지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화장장은 고속버스터미널 대합실을 연상하게 했다. 고로(高爐)마다 일련번호가 매겨져 있는 것이 노선별 승차 게이트 같았고, 손바닥만 한 투명구(透明口)를 사이에 두고 오열하는 유족은 시골로 내려가는 아버지를 배웅 나간 가족들과 다름없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고로마다 붙여진 두 시간 간격의 화장 예약 시간표였다. 배차 간격치고는 긴 시간이었다.

바람이 불자 얼마 남아있지 않은 은행잎이 떨어졌다. 나뭇잎이 창밖에서 어지럽게 날아다녔다. 초겨울이었다.

투명구 밖에서 자지러지는 듯한 곡성이 들려왔다. 봉구 씨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곡성이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 층 구내식당에서 언제 내려왔는지 막내 외삼촌과 고모부가 투명구에 얼굴을 바짝 대고 작업장 속을 쳐다보고 있었다. 작업장 안에서 제복을 입은 진행요원이 한 무리의 유족들에게 능숙한 자세로 거수경례를 붙이고는 고로 버튼을 눌렀다. 고로 속으로 관이 천천히 빨려 들어갔다. 유족들의 곡성이 더욱 커졌다. 이미 그 과정을 거친 탓인지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봉구 씨 가족들 표정은 무심했다.

“저 사람들 별정직일까요?”

유리창 안을 노려보던 막내 외삼촌이 진행요원들을 가리키며 그의 매형에게 물었다. 목소리에는 술기운이 묻어있었다. 날도 춥고, 기다리기도 지루하다며 동서끼리, 처남 매부들끼리 구내식당으로 올라가더니 그 사이 얼근해 있었다.

“시(市)에서 운영하니까 일반직이나 별정직 둘 중 하나겠지.”

술기운이기는 마찬가지인 큰 고모부가 별 쓸데없는 걸 다 물어본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생각 없이 대꾸했다.

“그럼 공챈가?”

“아이, 이 사람이. 왜, 자기도 해보려고?”

“……”

그때 검은색 정장 차림에 그 보다 더 검은 넥타이를 맨 남자가 봉구 씨 일행 곁으로 다가왔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헤어젤로 잘 정돈한 남자는 자신을 화장상품 상담직원이라고 밝혔다. 헤어젤은 봉구 씨 일행을 화장장 상담실로 이끌었다.

뭔 상품 설명? 네, 최상의 화장 서비스.

잠깐 사이 이런 눈빛들이 오갔다. 다들 우르르 따라나서려는데 고모부가 막아섰다.

“다 갈 필요 뭐 있나, 직계나 가. 우린 여기서 기다리자고.”

헤어젤이 남겨진 사람들을 향해 그럼 즐거운 화장 되십시오, 라는 표정으로 정중히 인사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저희가 마련한 몇 가지 상품을 소개해 드려볼까 합니다.”

봉구 씨 가족이 상담실 원탁에 빙 둘러앉자 남자는 서류 가방에서 코팅 인쇄된 카탈로그를 능숙한 솜씨로 펼쳐 보였다. 남자의 말투가 콘치즈 버터구이처럼 미끄덩거렸다. 카탈로그에는 금은방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각종 장신구가 인쇄되어 있었다. 에메랄드빛 목걸이, 루비색 귀고리, 보통 사이즈보다 약간 커 보이는 십자가 장신구에 피어싱 상품까지. 언뜻 염주 팔찌 모양의 장신구도 눈에 띄었다.

“어머! 얘들 좀 봐, 이거 이쁘지 않아?”

둘째 팔봉 씨 아내 수진 씨가 가느다란 검지를 피어싱에 갖다 대며 호들갑을 떨었다. 검지 손톱에는 아직 핑크색 매니큐어 찌꺼기가 남아있었다. 며칠 전 아버지의 임종 소식을 듣고 온 수진 씨가 매니큐어를 칠한 채 나타나는 바람에 숙자 씨에게 한 소리 들었었다. 허겁지겁 지우기는 했지만 아직 매니큐어가 말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녀의 호들갑에 봉구 씨 가족들이 각기 한 쌍의 눈으로 그녀를 쏘아봤다.

“야, 김춘심. 쫌!”

팔봉 씨가 주위의 시선을 의식한 듯 아내를 저지했다.

“수진이라니까! 그 이름 부르지 말랬지!”

그러고는 몇 마디 더 구시렁거리다 입을 닫았다. 헤어젤이 장내를 정리하듯 두 손을 들며 시선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수진 씨 얼굴에서 시선을 거둔 가족들이 카탈로그와 헤어젤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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