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려 나간 사이 거실 장식장 위에 잠시 올려 놓아두었던 구슬이 감촉같이 사라져버렸다. 처음에는 다른 곳에 놓아두었으려니, 이 방 저 방 건성으로 찾아보았다. 보석함 정도의 옥함이라 어디든 둘 수도 있고, 눈에 금방 띄지 않을 수도 있었다.

봉구 씨는 거실 중앙에 어정쩡하게 서서 구슬 둘만 한 곳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거실 장식장 위에 올려놓았던 기억만 맴돌았다. 구슬이 제 발로 굴러다니지 않는 이상 제자리에 얌전히 있어야 했다.

봉구 씨는 깍지 낀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거실을 서성거렸다. 구슬에 귀신이 씌웠나? 그럴 수……도 있었다.

생각이 깊어지자 머릿속에서 태풍 ‘산바’가 회오리쳤다. 창가로 다가갔다. 바람이 심하게 불고 기온이 급작스럽게 떨어져 있었다. 가로수에 얼마 남지 않은 은행잎이 뜯겨져 정신 사납게 날렸다. 유난히 바람이 심했던 한 해였다.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봉구 씨는 무슨 커다란 결심이나 한 듯 집안의 모든 전등을 켰다. 처음부터 다시 집 안을 샅샅이 뒤져볼 심산이었다. 이번에는 정밀 검사였다. 집 안 모든 서랍을 다 열었고, 모든 상자를 다 살폈고, 책장과 책장 사이, 화장대, 신발장과 냉장고 속도 확인했다. 침입자가 있었다면 그 짧은 시간 신발을 곱게 벗어놓고 들어오지는 않았을 터, 거실에 엎드려 뺨을 바닥에 대고 현관에서부터 옥함이 있었던 장식장까지 꼼꼼히 살펴보았다. 하지만 어디에도 신발 자국 같은 것은 남아 있지 않았다. 침입자는 현관에 신발을 곱게 벗어 놓고 들어 온 듯했다. 경우 바른 침입자였다.

마지막으로 안방으로 들어가 엉덩이를 하늘로 쳐들고 침대 밑으로 손을 집어넣어 쓸어보았다. 먼지를 뒤집어쓴 머리카락만 한 움큼 손에 잡혔다.

언제 들어왔는지 숙자 씨가 엉덩이 뒤편에서 팔짱을 낀 채 한심하다는 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봉구 씨는 그렇게 서 있지만 말고 같이 좀 찾아보자고 하고 싶었지만 워낙 다혈질인데다 구슬 때문에 요 며칠 심기도 불편해진 여자를 건든다는 것은 섶을 지고 불 속에 뛰어드는 격이었다. 애당초 구슬하고는 궁합이 맞지 않은 여자였다.

아내는 구슬이 도착하던 날 밤 기어이 분통을 터트렸었다.

“저 구슬만 바라보고 있으면 묘한 냄새를 풍기는 것 같아 구역질이 날 것 같다구! 천 년 만에 세상에 나온 미라 같고……, 밤이면 저것이 귀신으로 둔갑해 온 집 안을 싸돌아다닐 것 같단 말이야. 그냥 찜찜해 죽겠어!”

그때 봉구 씨는 아내를 바로 보지 못한 채 창밖만 멀끔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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