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들의 갑작스러운 태도변화에 당황한 것은 영업 사원이었다. 다 잡은 물고기 낚싯바늘에 주둥이 찢어져 놓치는 꼴이었다. 남자는 숙자 씨가 처음부터 맘에 걸렸는데 기어이 일을 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표정에는 그 어떤 동요도 드러나지 않았다. 아니 숙자 씨의 말이 당연한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네, 그렇고말고요.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고말고요.”

남자는 ‘말고요’를 두 번씩 반복하면서 마치 자신의 아버지가 지금 막 숨을 거두기나 한 것처럼 침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고는 약간 뜸을 들인 뒤 말을 이었다.

“육신은 옷가지와 같습니다.”

남자는 ‘하지만 육신은……’ 이렇게 말을 시작하려다 의도적으로 ‘하지만’을 생략했다. 없어도 문맥이 통하는데 굳이 ‘하지만’을 넣어 상대의 말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처럼 들리게 할 필요는 없었다. 표정은 역시 침울 모드.

“입고 해진 옷가지, 버려지는 옷가지에 불과할 따름이지요. 영혼은 육신의 옷을 벗어 던질 때 비로소 자유로워지는 겁니다. 가족들은 아버지의 때 묻은 옷가지 하나를 가지려 하는 것일 뿐이지요. 영혼이 천계에 이르는 것은 때 묻은 옷가지를 남기는 것과는 상관이 없죠. 마치 전사한 군인들이 손톱이나 발톱을 깎아 유품으로 남기듯, 육신은 그냥 벗고 가는 옷가지일 뿐입니다.”

남자는 침통해 보였지만 그의 말투는 여전히 기름졌다. 남자는 이런 종류의 말을 오만 가지도 넘게 외우고 있었다. 이 중 몇 가지만 써먹어도 대부분 유족은 넘어왔다. 숙자 씨 같은 부류는 상대도 되지 않았다. 설령 숙자 씨가 논리를 앞세워 들이대면 가족들의 감정을 건드리면 됐다. 이를테면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상기시킨다거나 유족들의 어렸을 적 이야기를 고인과 연결해 말 한다던가. 군대에서 극한 훈련을 마치고 ‘어머니 은혜’를 부르게 하는 것과 같은 원리였다. 어쩔 수 없는 타자. 한 다리 건너 백 리라고, 숙자 씨는 며느리였다. 그러나 이 방법은 최후의 순간에 사용해야 한다는 것은 물론이다, 감정을 먼저 건드리는 것은 진정한 프로가 아니다, 남자는 그렇게 생각했다.

“구, 군인들 바, 발톱.”

반응은 숙자 씨 말을 잠자코 듣고만 있던 봉길 씨에서부터 왔다. 이미 예상했다는 듯 남자는 침묵했다. 이럴 땐 천천히 고개 몇 번 끄덕여주면 됐다. 남자는 그렇게 했다. 다른 형제들도 천장만을 바라볼 뿐 말이 없었다. 봉길 씨가 마음을 진정시키려는 듯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크게 숨을 들이쉬더니 서류를 자기 앞으로 끌어당겨 직접 사인해 버렸다. 남자는 숙자 씨의 얼굴이 콘크리트처럼 딱딱하게 굳어지는 것을 여유 있게 바라봤다. 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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