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은 처음 보는 강사들의 강의 동영상을 30초만 보고 평가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강의 내용은 무음이어서 영상 속의 표정이나 몸짓만 봐야 했다. 이는 비언어적 행동과 커뮤니케이션을 연구하는 인도계 미국 사회심리학자 날리니 암바디 교수의 실험이었다.

학생들은 강사의 성실도, 호감도, 자신감, 열정, 유머 감각 등을 평가했다. 이 실험에서 비언어적 행동만으로 좋은 평가를 받은 강사들은 이미 강의에서 좋은 점수를 얻은 이들이었다고 한다. 짧은 시간 동안의 사람 표정과 몸짓만으로도 신뢰할만한 결과를 얻어낸 것이다.

보디랭귀지 전문가이자 ‘금세기 최고의 멘탈리스트 신체언어 규칙 16, 생각을 읽는다’의 저자인 토르스텐 하베너는 주의 깊게 관찰한 결과 의사소통의 프로세스가 다음과 같다고 말한다. ‘생각하기->몸동작으로 표현하기->입으로 말하기’ 순이라는 것. 말(언어) 보다 몸동작이 앞선다는 얘기다.

예컨대, 극도로 화가 났을 때, 이 사실을 뇌가 인지하고(생각), 험악한 표정으로 손을 책상에 내리치며(몸동작) “이제는 더 이상 못 참아”라고 말하는 것처럼.

미국 심리학자 폴 에크먼 교수와 윌리스 프리젠 교수가 만든 ‘얼굴지도’에 따르면 얼굴 근육의 수축으로 생기는 표정은 7000개 이상에 이른다고 한다. 토르스텐 하베너는 이들이 연구한 내용들 가운데 ‘미세표정’이야말로 사람이 순간적으로 제어하기 어려운 ‘진짜 표정’이라고 말한다.

회의 중 예기치 않게 직장 동료로부터 일을 떠안으며 “괜찮아요” 하면서도 순간 눈썹을 찡그리고 코를 찌푸렸다면 ‘괜찮은 것’이 아닌 화가 났다는 얘기다.

일찌감치 소비자의 미세표정에 주목했던 기업이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비누 세제 기업 P&G는 초창기 쌀 포대처럼 실로 밀봉한 세제 제품을 선보였다. 그러나 금세 매출이 정체에 이르자 문화인류학도 출신들을 마케팅팀에 대거 투입, 해법을 찾도록 했다. 그들은 소비자가 세제포대 실밥을 풀 때마다 십중팔구 인상 찌푸리는 미세표정을 보고 제품 개봉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를 개봉하기 쉽게 바꾸자 매출이 다시 크게 오르기 시작했다. P&G는 여러차례 소비자들 대상으로 서베이를 했지만 제품 개봉에 따른 불만을 발견할 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무의식중에 제품의 실밥 개봉이 짜증스러웠음을 표정으로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국내에선 엘지전자가 2009년 인사이트마케팅팀을 신설하고, 소비자들의 미세표정 분석에 따른 야채칸 냉장고를 인도에 선보여 그동안 1%에 불과했던 영업이익률을 10%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고 한다.

고도로 숙련된 비밀요원 내지 아예 사기를 작정한 사람이 아닌 이상 상대방의 표정 또는 몸짓이 말보다 진심일 확률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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