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전성 악화로 금융당국 나서 관련 규제 완화
유동성 위기, 저축보험 경쟁과 콜옵션 사태까지

올해 생명보험업계는 금리 인상 직격탄을 맞아 자산 건전성이 위태로워졌다. 고물가 시대에 업황 악화가 지속되면서 생명보험사들이 타개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편집자 주>

금리가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보험사의 건전성을 뒤흔들자 금융당국은 보험사 건전성 규제를 일시적으로 완화했다. 은행 예·적금 이율 상승으로 인해 현금을 확보하기 위한 보험사 저축보험 금리 경쟁도 심화했다.

◇ 기준금리 고공행진…RBC비율 개선 총력

최근 1년간 미국 기준금리가 3.75%포인트 급등하면서 국내 기준금리도 2.0%포인트 상승했다.

일반적으로 금리가 오르면 매도가능증권으로 분류된 채권의 평가이익은 반대로 떨어진다. 이는 보험사의 재무 건전성을 나타내는 지급여력(RBC)비율의 하락을 의미한다.

RBC비율은 보험 가입자들이 일시에 보험금을 청구했을 때 지급할 수 있는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다. 보험업법상 보험사는 100% 이상을 유지해야 하지만 금융당국은 150% 이상을 권고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1분기 말 보험사 RBC 비율은 209.4%로 전분기(246.2%) 대비 36.8%포인트 하락했다. 해당 기간 생보사는 45.6%포인트, 손보사는 20.9%포인트 떨어졌다.

이에 금융당국은 보험사 건전성 규제 완화안을 마련했다. 내년 새 국제회계기준(IFRS17)과 신지급여력제도(K-ICS)가 시행되면 RBC비율의 의미가 사라지게 되는 만큼 일시적인 구제안이었다.

IFRS17이 도입되면 보험부채는 원가가 아닌 시가로 평가되므로 자본 적정성 유지 부담이 가중된다. 이에 보험사들은 올해 최대한의 자본확충을 단행해 건전성 지표를 끌어올려야 하는 상황이다.

K-ICS는 현행 RBC제도를 IFRS17에 맞춰 개정한 것으로, 보험사의 자기자본(가용자본)이 분자가 되고 리스크 별로 측정된 위험액(요구자본)이 분모가 돼 산출된다. 가용자본은 손실흡수력의 정도에 따라 기본자본과 보완자본으로 구분된다.

금융위원회는 보험사의 RBC비율 하락에 대응해 책임준비금 적정성평가(LAT) 제도상 잉여액의 40%를 RBC 규제상 가용자본으로 인정하는 방안을 적용했다. LAT는 각 보험사의 보험부채 시가평가액을 추정해 그보다 많은 책임준비금을 적립하도록 하는 제도다.

이에 보험업계 2분기 기준 RBC 비율은 209.4%에서 218.8%로 9.4%포인트 올랐다. 생보사는 7.4%포인트, 손보사는 12.7%포인트 개선됐다.

◇ 유동성 위기에 ‘연 5.95%’ 고금리 저축보험 개시

고금리에 은행권 예·적금 이자가 급등하면서 생보사들은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앞다퉈 고금리 저축성보험 상품을 내놨다. 저축보험이란 매월 일정 금액의 보험료를 납부하고 만기 때 총납부액과 이자가 더해진 환급금을 받는 상품을 말한다.

생보사들이 이차 역마진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고금리 상품을 출시한 건 지난 2012년 대거 판매한 고금리 저축보험의 만기가 올해 도래하기 때문이다. 생보사에 묶여있던 자금이 풀리면 예·적금 금리가 높은 은행권 상품으로 쏠릴 우려가 있다.

올초 연 1~2%대에 불과하던 저축보험 금리는 지난 8월 연 4%를 돌파한 데 이어 10월 연 5%를 넘어섰다. 다만, 금융당국의 자제 권고로 6%대 상품은 나오지 못하고 있다.

현재 KDB생명과 동양생명은 연 5.95%짜리 저축보험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이는 올해 출시된 방카슈랑스 채널 전용 저축보험 상품 중 최고 금리다.

금리 인상기에 레고랜드 사태와 흥국생명 콜옵션(조기상환) 미이행 번복 사태까지 겹치면서, 일부 생보사들은 단기 차입금 한도를 늘리는 방식으로 ‘마이너스 통장’ 한도를 확대하고 나섰다.

단기자금은 은행으로부터 대출받는 당좌차월이나 환매조건부채권(RP)매도를 통해 조달한다. 이 한도를 늘렸다는 건 혹시 모를 상황에 빌릴 수 있는 자금 규모인 마이너스 통장 규모를 늘렸다는 의미다.

생보사 1위 삼성생명은 최근 단기자금 차입한도를 기존 2000억원에서 3조6000억원으로 확대했다. 중소형사인 푸본현대생명도 단기자금 차입한도를 5000억원에서 1조5000억원으로 늘리며 차입한도가 자기자본(1조2800억원)을 넘어섰다.

◇ 생보 먹거리 경쟁 치열…상품 판매 활성화

생보사들은 매출 확대를 위해 그간 보장하지 않았던 새로운 보험상품 시장에도 뛰어들고 있다.

흥국생명이 올해 4월 생보사 최초로 자동차부상치료(자부치) 특약을 담은 상해보험을 출시하기 시작하자 동양생명, 농협생명, 삼성생명, 교보생명 등도 판매에 동참했다.

자부치 특약은 자동차 사고를 직접적인 원인으로 부상 치료를 받았을 때 1급부터 14급까지 부상 급수에 따라 보험금을 지급하는 특약이다. 주로 손보사들이 운전자보험에 탑재해 판매해왔다.

생보사들이 자부치 시장에 뛰어드는 이유는 손해율은 낮고 수익성은 높기 때문이다. 운전자 보험의 손해율을 살펴보면 2019년 63.3%에서 지난해 58.4%까지 하락하는 등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다.

뿐만 아니라 금융위가 최근 ‘1사 1라이선스’ 규제를 완화하면서, 생보사들의 상품 범위는 더욱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1사 1라이선스는 1개의 금융그룹이 생명보험과 손해보험 각각 1개만 운영할 수 있게 한 제도다. 규제 유연화에 따라 향후 생보사들은 펫보험만 다루는 단종보험사나 미니보험(소액단기보험)만을 다루는 전문보험사를 자회사 형태로 신규 설립할 수 있게 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시장이 포화하고 회사별 매출 경쟁이 심화하면서 생·손보 업권간 경계가 점점 허물어지고 있다”며 “불완전판매 등을 고려해 금융당국의 세밀한 관리·감독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리가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보험사의 건전성을 뒤흔들자 금융당국은 보험사 건전성 규제를 일시적으로 완화했다. 은행 예·적금 이율 상승으로 인해 현금을 확보하기 위한 보험사 저축보험 금리 경쟁도 심화했다.(사진 출처=픽사베이)
금리가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보험사의 건전성을 뒤흔들자 금융당국은 보험사 건전성 규제를 일시적으로 완화했다. 은행 예·적금 이율 상승으로 인해 현금을 확보하기 위한 보험사 저축보험 금리 경쟁도 심화했다.(사진 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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