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업계 “알맹이 없는 쇄신안”

금융당국이 협의체를 구성해 실손의료보험(실손보험) 적자를 줄이기 위한 대안 마련에 나섰지만, 실효성 있는 대책은 마련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4세대 실손보험 실적을 보험사 경영평가에 반영함으로써 보험 영업 현장에 압박이 클 것으로 우려된다.

◇ 복지부 빠진 실손보험 협의체 출범

19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기획재정부, 금융감독원, 보험연구원, 생명·손해보험협회는 이날 실손보험의 적자를 줄이기 위한 정책협의체를 출범하고 발족 회의를 개최했다.

실손보험은 국민 3500만여명이 가입해 ‘제2의 건강보험’으로도 불린다. 그러나 현재 실손보험은 손해율이 130%를 초과해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실손보험 판매를 중단하는 보험회사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실손보험 판매 보험사는 2010년 30개사에서 2021년 10월 15개사로 줄었다.

이에 따라 협의체는 회의를 통해 ▲비급여진료 관리 강화 ▲상품체계 개편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공·사보험의 역할 재정립 ▲보험사기 예방 등을 검토키로 했다.

현재 실손보험에서 가장 누수가 심각한 비급여 항목은 백내장 수술로 꼽힌다. 작년 9월 백내장 검사비가 급여화됐지만, 일부 의료기관은 다초점렌즈 가격을 대폭 올리는 편법으로 사익을 챙겨 문제가 되고 있다.

이에 보험사들은 세극등 현미경 검사를 통한 정확한 진단 제출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세극등 현미경은 외안부와 전안부 검사에 이용되는 안과의 기본 장비로 백내장 유무를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협의체에서 관련 사안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은 마련되지 않았다. 당초 협의체에 참여할 예정이었던 보건복지부가 막판에 불참 의사를 표시했기 때문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금 누수의 핵심인 비급여 관리의 주무 부처인 복지부가 불참하면서 사실상 실효성 있는 대책은 마련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협의체에서 거론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역시 의료계의 반발로 14년째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있는 사안 중 하나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보험금 청구를 위한 종이 서류를 전자서류로 대체하는 것이 골자다. 현재 실손 가입자들이 보험금을 받기 위해서는 병원에서 직접 종이 서류를 발급해 팩스, 이메일, 우편 등의 방식으로 보험사에 청구해야 한다.

이처럼 번거로운 절차로 인해 보험사와 소비자단체는 수년 전부터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반면 의료계는 '의료기록 등 환자 개인정보 유출 우려'를 이유로 이를 강력히 반대하는 중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역시 복지부가 참관해 해결에 앞장서줘야 하는 부분"이라면서도 "하지만 복지부가 협의체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오랜 기간 거론된 문제를 다시 상기하는 정도로 끝났다"고 설명했다.

◇ 4세대 실손보험 전환, 영업 현장에서의 괴리 커

특히 협의체는 이번 회의를 통해 보험사가 4세대 실손보험으로의 전환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도록 전환 현황을 주 단위로 점검하고, 실적을 경영실태평가(RAAS)에 반영할 방침이다. 이는 보험 영업 현장에서 큰 압박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7월 출시된 4세대 실손보험은 보험금 누수를 막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비급여 진료 이용 빈도에 따라 보험료가 인상되는 상품이다.

그러나 기존 1~3세대 실손보험 가입자의 4세대 전환율은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기존 실손보험은 자기부담이 매우 낮고 보장 범위가 넓은 반면, 4세대 실손보험은 쓰는 만큼 내야 한다는 인식 때문이다.

실제로 1세대 실손보험 가입자가 4세대 실손보험으로 전환한 건수는 2만7686건으로 4세대 실손보험 판매 건수의 9.2% 수준에 불과하다. 2세대 실손보험에서 4세대 실손보험으로의 전환 건수도 2만2103건(7.3%)에 그쳤다.

보험사 역시 4세대 실손보험 유도가 어려울뿐더러, 적자 폭을 줄이는 데 효과적일지 의문이라는 입장이다. 기존 만성 적자를 기록하던 1, 2세대 실손보험에서 4세대 실손보험으로 전환하는 소비자는 대부분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은 소비자인 만큼, 적자 구조가 크게 바뀌지 않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가운데 일부 보험사는 이미 4세대 실손보험 전환 유도를 위해 설계사들을 대상으로 고강도 시책을 내걸고 있다.

KB손해보험은 오는 2월부터 4세대 실손보험 판매 강화를 위해 전속 설계사와 범인보험대리점(GA)에 지급하는 현금 시책을 확대할 예정이다.

현대해상은 지난 3일부터 이달 28일까지 1세대 실손보험의 4세대 전환 시책 강화를 안내하고, 단독 판매 전환 시 보험료의 450%를 시책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DB손해보험 역시 구 실손보험을 4세대로 전환하면 보험료의 200%, 장기인보험 연계 시 400%의 시책을 지급할 계획이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높은 자기부담 비율로 4세대 실손보험 가입을 거부하는 만큼, 이를 권하는 영업 현장과의 괴리감이 우려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실손보험 적자 개선에 대한 금융당국의 의지는 희망적이지만, 적자를 드라마틱하게 줄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오히려 4세대 실손보험 전환을 유도하는 것이 영업 현장에는 압박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 협의체 발족, 장기적으로는 희망적

한편, 실손보험 정상화를 위한 이번 협의체 발족이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긍정적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드러났다는 평가다.

특히 보험업계는 이번 회의를 통해 당장 실손보험 적자 규모가 크게 줄어들지는 못하더라도, 미래의 더 큰 적자를 막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향후 관계부처와 지속적인 협의를 통해 더욱 구체화된 방안을 마련하면 ‘지속가능한 실손보험’이 탄생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진 출처=픽사베이)
(사진 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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