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두 마리 토끼 모두 잡을 순 없어"…‘속 빈 강정’ 지적도

[보험매일=임성민 기자]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는 보험약관 개선을 주문한 가운데, 이에 대한 보험업계의 고충이 잇따르고 있다.

소비자의 약관 이해도 개선을 위해서는 용어의 명확한 풀이에 따른 해석의 용이성이 필요하지만, 간단·명료성까지 주문하는 것은 현실 불가능하다고 하소연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소비자단체도 제도 추진 취재에는 동의하지만 객관성과 투명성이 배제돼 향후 구조적인 문제로 소비자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핵심이 배제된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 간결하고 이해도 높은 약관? 현실적으로 어려워
27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의 보험약관 이해도 개선을 위한 정책이 보험업계와 소비자보호단체로부터 핵심이 배제된 정책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지난 26일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소비자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약관을 만들기 위해 ‘보험약관 제도개선 TF’를 운영하겠다”며 약관 이해도 개선 작업을 위한 계획을 밝혔다.

이어 금융감독원은 ‘보험산업 감독혁신 TF’를 통해 금감원 내부에 약관순화위원회를 설치, 표준약관 구성과 용어를 쉽게 고치기로 했다.

이는 지난 1월 공정경제 추진전략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약관상 글씨 크기가 작다고 지적했으며, 금융당국이 보험약관의 분량이 많을 뿐 아니라 내용 또한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이해도 높은 약관 개선 작업을 두고 보험업계의 고충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예전부터 금융당국은 수 백 페이지에 달하는 보험약관에 대해 간결함을 요구해왔다. 문제는 이번에 간결함과 함께 소비자의 이해도를 높일 수 있도록 쉬운 약관을 만들라고 지시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보험약관에는 보험금 지급사유 및 부지급 사유가 명시돼 있지만 이를 근거하기 위한 법률용어 및 의학용어, 보험용어 등이 다수 포함된다.

소비자의 보험약관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해석이나 간단한 용어로의 풀이가 첨부돼야 하는데, 이럴 경우 약관의 분량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약관이 간결하기 위해서는 전문용어가 명시될 수밖에 없는데, 이는 최근 금융당국이 발표한 소비자의 약관 이해도 개선 추진에 역행하는 행위에 해당된다.

특히 보험업계는 약관의 간결함 및 이해도 개선이 동시에 이뤄지기 위해서는 구조가 복잡하지 않은 단순한 상품만 판매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현재 판매중인 상품 중에서는 정기보험과 같은 상품의 약관이 간단·명료한데, 이는 소비자의 관심도 또한 낮아 결국 보험시장 자체가 축소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약관의 이해도 개선은 보험사의 공급 상품 자체를 줄일 수 있는 계기가 되면서 결국 소비자의 상품 선택권 자체를 줄여 시장 규모가 축소될 수 있다”고 말했다.

◇ 핵심 배제된 제도, 의미 없단 지적도
금융소비자연맹은 금융당국의 이번 제도 추진을 놓고 강도 높은 비판을 했다. 소비자 보호를 위해서는 약관 이해도가 아닌 명확성이 배제됐다는 것이다.

보험사와 소비자의 분쟁은 약관이 어려워서가 아닌 불투명한 명확성과 상품 공급자의 자유분방한 해석으로 발생하는데, 객관성과 투명성, 정확한 해석이 모두 빠졌다는 설명이다.

예를 들면 암보험금 지급분쟁, 즉시연금 사태는 약관이 어려워서 발생한 게 아닌 약관상 불분명한 해석이 문제가 됐다는 주장이다.

금소연 관계자는 “약관을 보고 이해하기 어렵다고 금감원이나 보험사에 민원을 제기한 사례는 없다”면서 “하지만 명확하지 않은 약관은 매년 발생하고 있는 소비자 분쟁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에 명확성이 약관 개선 작업의 핵심이 돼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최 위원장이 스스로 얘기했듯 보험 가입 후 약관을 전부 보는 사람은 없다”며 “사고 발생 이후 보험금 지급 여부를 찾아보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에 더욱 해석 문제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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