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시인과 함께읽는 사기(史記)
신하들이 만든 군주, 토호들과 싸우다송(宋) 화씨의 난
이흔 기자  |  xionmi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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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9.27  09:4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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惡之不敢遠 好之不敢近 오지불감원 호지불감근
싫어한다고 감히 멀리할 수 없고, 좋아한다고 감히 다가갈 수 없다. (左氏傳 양공26년)
송 평공의 태자 좌가 사신을 접대하러 갈 때 혜장이려가 시종하기를 자청하며

송나라 평공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첫 부인에게 낳은 아들 좌(痤; 쿠오)가 태자였고, 그 뒤에 ‘기’라는 첩을 얻어 낳은 아들이 좌(佐; 주오)다.

아직 공공이 다스릴 때 사도 예(芮)가 딸을 낳았는데, 온 몸이 붉고 털이 많아 제방 밑에 내다버렸다. 아이 이름 기(棄)는 ‘버려진 아기’라는 뜻이다. 공공 부인 공희의 시녀들이 물에 나갔다가 버려진 아이를 발견하고 데려다 길렀다. 아이는 장성하면서 미인이 되었다.

평공이 저녁마다 어머니 공희에게 문안드리러 갔다가 함께 식사하면서 아름다운 기에게 마음을 두었다. 공희가 기를 평공에게 들여보내자 기가 사랑을 받아 주오를 낳았다. 주오는 외모가 좋지 않았으나 마음은 매우 유순했다. 반면 태자 좌는 외모가 훤칠하되 마음씀이 사나워 측근들이 모두 두려워하고 마음으로부터 증오하였다.

어느 가을에 초나라 사자가 진(晉)을 방문하면서 송나라를 지나갈 때 태자가 교외로 나가 그를 대접하게 되었다. 태자의 시종인 혜장이려가 따라가기를 자청했다. 평공이 “태자는 자네를 싫어하지 않는가”라고 하자 이려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섬기는데, 미워한다고 감히 멀리할 수 없고, 좋아한다고 감히 다가갈 수 없습니다(惡之不敢遠 好之不敢近). 태자의 공무를 받들 사람은 있으나 개인적 시중을 들 사람은 없으니 따라가려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려가 앞서 도착하여 땅에 구덩이를 파고 소를 잡아 그 피를 구덩이에 채운 뒤 동맹의 글을 만들어 함께 덮어두고 곧장 평공에게 달려와 보고했다. “태자가 반란을 일으키려 합니다. 초나라 사람과 동맹까지 맺었습니다.” 평공이 “그는 나의 아들이다. 굳이 무엇 때문에 그런 일을 한단 말인가”하고 되묻자 이려는 “빨리 군주가 되고 싶은가봅니다”라고 대답했다. 평공이 사람을 보내 조사하니 물증까지 있었다. 평공이 부인과 좌사에게 물어보니 모두 “그런 말을 들은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태자를 잡아오니 태자는 거듭 결백을 주장했다. 평공은 증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누구든지 데려오라면서 한나절의 시간여유를 주었다. 태자는 “주오만이 나의 결백을 입증해줄 것이다. 어서 데려와 다오.”하고 울부짖었다. 좌사가 주오를 데리러 가서 일부러 붙들고 말을 붙여 시간을 끌면서 천천히 걸어오니, 정해진 시간이 넘어가 태자는 결국 교수되었다. 나중에 평공은 그 사건이 꾸며진 일임을 알게 되어 이려를 삶아 죽였다.

평공이 재위 44년에 죽고 주오가 뒤를 이었다. 원공이다. 원공은 송의 유력가문인 화(華)씨, 상(尙)씨들과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다. 앙금이 쌓인 끝에 원공은 화씨들을 제거하려 했다. 원공의 계획을 알아챈 화향 화해 향녕 등은 “도망치지 않으면 죽게 될 것이다. 그러느니 우리가 먼저 손을 쓰자”하고는 우선 제후 일족을 먼저 죽이기로 모의했다.

화해(華亥)가 거짓으로 앓아누웠다. 원공의 친척들이 문병을 갔다가 화씨들에게 공격을 받았다. 공자 인(寅)과 여융, 주, 원, 정 등이 살해되고 향승과 향행은 창고에 갇혔다. 그 유명한 ‘화씨(華氏)의 난’이다. 원공이 전갈을 보내 그들을 풀어줄 것을 요구했으나 화해는 듣지 않고 오히려 원공을 협박하였다.

갈등은 협상을 통해 해결되었다. 원공은 태자 난과 동생 신 등을 화씨들에게 인질로 보내고, 또 화씨의 아들들을 인질로 데려오는 동맹을 맺었다. 이밖에 다른 공자들과 손주들은 정나라로 피신했다. 초나라의 태자 건과 오자서 등이 망명하여 왔다가 정나라로 들어간 것이 바로 이 무렵이다.

이야기 PLUS

제후와 제후의 대부들이 나라 안에서 서로 인질을 잡고 있는 상태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 오래 지속되기는 어려웠다. 화씨들은 장차 군주가 될 수도 있는 공자들을 억류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을 잘 보살피는 일만 해도 보통 성가신 게 아니었다. 화해는 매일 인질로 잡은 공자들이 밥을 먹은 후에야 자기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성가시기는 원공 또한 마찬가지였다. 원공은 매일 아침 화씨 집으로 와서 공자들을 살피고 돌아갔다. 일이 번거롭게 되자 화해는 공자들을 먼저 풀어주려 했다. 그러자 ‘인질을 다 풀어주고 나면 우리 안전은 어떻게 되는가.’ 상영이 반대했다.

마침내 원공은 대사마 화비수와 상의하여 화씨들을 치기로 했다. 화비수는 처음에 ‘근심을 없애려다 오히려 근심을 키우는 수도 있다(無乃求去憂而滋長乎)’고 만류했으나 원공의 뜻이 확고한 것을 알고는 그 명에 따랐다.

원공은 잡아두었던 화씨의 아들들을 죽여버리고 화씨와 향씨 집안을 공격했다. 화씨와 향씨들은 진(陳)나라로 달아나고 오나라로 달아났다. 그들이 원공의 공격을 받았을 때 향녕은 곧 태자를 죽이려 했다. 그러자 화해는 “군주를 범하다가 도망가는 사람들이 태자까지 죽인다면 천하의 어느 나라가 우리를 받아주겠는가”라고 하여 태자를 석방하고 달아났다.

화씨들이 진과 오나라 등으로 달아나 반격할 기회를 노렸으므로 뒤에 여러 나라들이 개입하게 되고, 원공은 이에 맞서 다른 우방들과의 연합군을 구성하면서, 이 내란은 여러 제후국들 사이의 국제전 양상마저 띠게 된다.

송 원공은 잡고 있던 화씨의 인질들을 죽여버리고 화씨와 향씨 두 집안들 공격했다. 그들은 진(陳)나라와 오나라 등으로 달아났다. 많은 제후들이 이 싸움에 말려들었다.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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