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시인과 함께읽는 사기(史記)
나라를 위해서라면 개인감정 따위 잊는다진 도공-기해천수
이흔 기자  |  xionmi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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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6.18  09: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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惟其有之 是以似之 유기유지 시이사지
오직 덕이 있는 사람이니 그와 비슷한 사람을 천거할 수 있다. <左傳>
진(晉)의 기해가 군주에게 좋은 인물을 사심 없이 추천한 일에 대해 시경에서 인용

진(晉)나라 여공이 시해된 뒤 새 군주로 영입된 도공은 옛 군주 양공의 후손이다. 양공의 큰 아들 영공이 덕을 잃어 살해되었을 때 제후 자리는 양공의 아우 성공에게로 이어졌는데, 그로부터 3대째에 또 민심을 잃음으로써 다시 양공의 후손에게로 돌아간 것이다.

즉위할 때 도공의 나이는 열네 살이었다. 도공은 주나라로 그를 영입하러 온 대부들에게 “군주를 세우는 것은 그의 명령에 따라 나라를 다스리려는 것인데, 군주를 세워놓고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면 무엇 때문에 군주가 필요하겠는가”라면서 충성의 서약을 먼저 요구했다. 대부들이 맹세하자 돌아와 제후가 되었다.

도공은 백관에게 명하여 백성의 불필요한 노역을 없애고 채무를 탕감하며 죄인을 사면했다. 세금을 줄이면서도 불필요한 사치성 지출을 줄이니 재정은 튼튼해졌다. 농번기에는 백성을 부역에 동원하지 못하도록 하니 백성들이 좋아했다. 비로소 민심이 돌아오고 나라가 안정되었다.

도공은 또 숨어있는 인재를 등용하려고 애썼다. 그가 다스리는 동안 조무와 위상 위힐 사방 등이 경이 되고 순가 순희 난염 한무기가 공족대부가 되었다. 관직을 함부로 남발하지 않고 백성들에게 존경받는 인물들을 찾아 등용하니 백성들이 정치를 비방하는 말이 없어졌다. 이로써 진나라는 다시 패자의 위세를 되찾게 되었다.

기해(祁奚)는 공정하기로 소문난 관리였다. 기해가 은퇴를 청하자 도공이 후임으로 누가 적당하겠느냐고 물었다. 기해는 해호(解狐)를 천거했다. 그는 평소 기해와 사이가 좋지 않은 적수였으므로 도공이 놀라서 물었다. “해호는 그대와 원수지간이 아니었는가.” 그러자 기해가 대답했다. “주군께서는 원수가 누구냐 물으신 게 아니라 이 자리에 적임자를 물으셨습니다. 그가 적임자이므로 천거한 것입니다.” 실로 공사(公私) 분별이 뚜렷한 답변이었다.

그러나 해호를 그 자리에 임명하기도 전에 그가 죽었으므로 도공이 다시 물었다. “누가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겠는가.” 기해는 “오(午)라면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오는 기해 자신의 아들이었으므로 도공이 또 놀랐다. 기해가 말했다. “주군께서는 소신의 아들이 누구냐고 물으신 게 아니라 이 자리에 적임자를 물으셨습니다. 오라면 능히 감당할만하므로 제가 천거한 것입니다.” 도공은 이를 받아들여 기오를 중군위에 임명했다. 세상은 이를 가리켜 ‘기해천수’(祁奚薦讐; 기해가 원수를 천거하다)라 하여 기해의 공정함을 칭찬했다.

“기해가 자기 원수를 천거한 것은 아첨이 아니었고, 아들을 내세운 것은 편파가 아니었으며, 자기 수하의 아들을 쓴 것은 파당을 짓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역정을 든 것이 아니었다. 시경에 ‘유기유지 시이자시(惟其有之 是以似之)’라 했거니와 오직 그 사람이 덕이 있는 사람이기에 그와 닮은 사람들을 알아볼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기해가 그런 사람이었다.”

위강(魏絳)은 뒤에 위장자라 불린 사람으로, 중군사마의 직에 있었다. 도공이 형땅에 제후들을 모아놓고 회맹을 주재하였는데 도공의 아우 양간(楊干)이 대열을 흩뜨리자 위강은 기율을 잡기 위해 양간의 마부를 처형했다. 공자를 벌할 수 없으니 대신 어자를 죽인 것이다. 위강은 스스로 사구에게 자기 죄를 청했다. 도공이 노하여 위강을 처벌하려 했으나, 대부들은 위강에게 죄가 없다고 만류하며 위강의 충직함을 변호하였다. 도공이 그의 능력과 성품을 알아보고 오히려 그를 중용하니 위강이 많은 공을 세웠다.

위강은 변방을 자주 침범해오던 이민족 융(戎)과 적(翟)을 치려고 했는데, 위강은 오히려 그들을 위무하여 친선함이 낫다고 건의했다. 도공이 그의 말을 따라 포용정책을 택했다. 위강이 직접 융에 가서 친선을 맺고 오니 이후 침략이 그쳐 국경이 평안해졌다.

“과인이 지난 8년 사이에 아홉 차례나 제후들의 회맹을 주재하고 융적과도 화목하게 된 것은 모두 그대의 공이다.” 후에 도공은 정나라에서 보내온 악사와 병거, 종과 여인들을 절반이나 위강에게 나누어주면서 치하했다.

이야기 PLUS

그 옛날 은(殷)나라 시조 성탕 임금은 “군주가 백성을 자식처럼 여기면, 유능한 사람들을 모두 궁에서 볼 수 있게 된다(君國子民 為善者 皆在王宮)”고 했거니와 도공의 때가 그러했다. 널리 숨은 인재를 찾아 등용하니 공실에는 강직하고 청렴한 인재들이 많았으며, 여러 가지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들어 제후를 도왔다. 정치가 혼란해지면 그와 반대의 현상이 벌어질 것은 물어볼 필요도 없다.

도공의 악사 중에도 현명한 사람이 있었다. 광(廣)이란 사람이었는데, 위(衛)나라에서군주 헌공이 쫓겨났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마침 도공의 곁에 있었다. 도공이 광의 생각을 물으니 광이 올곧게 대답했다. “그 임금이 심하기도 했습니다. 훌륭한 임금은 옳은 자를 상주고 옳지 못한 자를 벌주는 것입니다. 백성을 자식같이 돌보고 하늘처럼 덮어주며 땅과 같이 안아준다면 백성이 임금을 부모처럼 받들고 해와 달처럼 우러르며 신명처럼 공경하고 우레와 같이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내쫓길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임금이 백성을 곤경에 빠트리면 마치 나라에 주인이 없는 격이니 어찌 내쫓기지 않겠습니까.”

군주가 귀를 열자 일개 악사조차도 바른 말 하기를 주저하지 않은 것이다. 그야말로 ‘열린 정치’였다. 나라가 부강해지지 않을 리가 없었다.도공이 후임자를 추천하게 하자 기해는 해호를 천거했다.

“해호는 그대의 원수가 아닌가.” 도공이 놀라서 묻자 기해가 대답했다. “저는 단지 적임자를 말씀드린 것이옵니다.”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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