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금 지급 갈등 ‘판박이’…시대에 뒤떨어진 약관 조사 시급

 

[보험매일=방영석 기자] 암보험 부지급 갈등이 격화되면서 보험업계에 자살보험금 사태의 그림자가 다시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의료기술 발전과 법원 해석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과거 약관을 고수하던 보험업계의 안일함이 소비자와 보험사 사이에 불필요한 갈등을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소비자와 보험사의 갈등이 지속적으로 격화되고 있는 암보험일당 보험금 부지급 문제는 이 같은 보험사의 태도가 초래한 ‘예견된 인재’였다.

보험사는 과거 판매했던 암보험일당특약의 보험금을 수술, 방사선치료, 항암치료 시에만 지급했으며, 예후 관리를 위해 요양병원에 입원한 계약자에게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보험사가 암보험을 판매하던 당시에는 대다수 암환자들의 생존률은 채 5년을 넘기지 못했다. 자연스레 환자들은 종합병원에서 치료를 받았고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에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암환자들의 생존 기간이 늘어나면서 보험사는 예상치 못한 보험금 지급 사유가 발생했음을 깨닫게 된다.

‘직접치료’가 아닌 ‘요양치료’를 위해 요양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이 입원 일당 보험금 지급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보험사는 2000년대 중반 대법원이 내린 판례에 의지했다. 당시 대법원은 보험사 약관에서 정한 암의 직접적인 치료 목적의 입원이 수술이나 방사선치료, 항종양 약물치료에 한정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이 같은 판단 역시 법원 판결의 변화를 반영하지 않은 결과다. 대법원이 이후 요양병원 입원 환자가 제기한 소송에서 요양병원의 치료를 ‘직접 치료’로 인정한 판례를 남겼기 때문이다.

암환자들은 금융감독원에 보험금 지급을 요구하는 민원을 단체로 제기했다. 암환자들과 보험사들은 보험금 지급에 대한 금감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약관 해석의 결과에 따라 보험금은 지급될 수도 지급되지 않을 수도 있다. 기자가 문제시하려는 것은 보험금 지급 여부 자체가 아닌 불완전 약관을 방치한 보험사와 금감원의 책임이다.

의료기술 발전과 법원 판결의 변화를 반영하지 않고 안주하던 보험사의 안일함이 결과적으로 보험금 지급 여부와 관계없이 소비자들의 피해를 초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이번 암보험 지급 분쟁에 관련된 환자들은 일분일초가 아까운 시간에 거리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보험금이 지급되더라도 이들이 잃어버린 시간은 누구도 보상할 수 없다. 애초에 약관에 명확한 부지급 사유를 명시하거나 시대가 변함에 따라 정기적으로 약관을 개정하기만 했어도 이 같은 피해는 막을 수 있었다.

미래의 위험을 보장하기 위해 보험에 가입한 소비자들이 입은 피해의 책임은 관성적으로 약관을 사용한 보험업계와 이를 판매하도록 허가한 금감원에 있다.

불분명한 약관으로 골머리를 앓았던 기억이 오래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보험사와 금감원의 책임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자살한 가입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으나 가입 이후 3년이 경과할 땐 그러하지 아니하다’는 약관 한 줄로 금융당국과 보험업계가 수년간의 기 싸움 끝에 보험금 지급을 결정했던 자살보험금 사태에서 보험사와 금감원은 깨우친 바가 없는 것일까?

금감원은 암보험입원일당 약관을 개선하고 논란이 일고 있는 요양병원 관련 특약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문제가 터졌을 때 해당 약관만 뒤늦게 개선하는 것은 해결책이라 이야기하기 민망하다. 소를 잃었으면 외양간을 고쳐야한다. 소비자보호를 최우선으로 한다는 금감원이라면 더욱 그렇다.

지금이라도 과거 판매된 상품 약관 중 의료기술과 법원 판결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약관이 있는지 전면적인 조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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