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출산서 비롯된 손해는 면책" 주장엔 "보험료 왜 받나"

[보험매일=이흔 기자] 출산 과정에서 아기가 갑자기 이상증세를 보여 뇌 손상을 입은 경우도 '외래의 사고'로 인한 상해에 해당해 '태아 보험'을 판매한 보험사가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209민사단독 오상용 부장판사는 A씨가 B보험사를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 소송에서 B사가 1억7천여만원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2010년 초 임신 중이었던 A씨는 태어날 아이와 자신을 피보험자로 해서 B사의 태아 보험에 가입했다.

보험 기간 중에 '급격하고도 우연한 외래의 사고'로 신체에 상해를 입었을 때 그 손해를 보상한다는 게 약관이었다. 

A씨가 출산 전에 받은 검사 결과 본인이나 태아 모두 특이 소견은 없었다.

그런데 출산 당일 분만 과정에서 태아곤란증(산소 결핍으로 태아에게 일어나는 증세)이 의심돼 응급 제왕절개 수술이 이뤄졌다. 출생 당시 아이는 반사 반응이 늦었고, 태변(배내똥)이 있는 상태였다.

아이는 이후 저산소성 뇌 손상 진단을 받았고, 운동·언어능력 발달이 늦어 현재 재활치료가 필요한 상태다.

A씨는 보험사를 상대로 보험금을 달라고 요청했다.

보험사는 아이의 뇌 손상은 약관상 상해에 해당하지 않고, 약관에 '임신, 출산 등을 원인으로 해 생긴 손해는 보상하지 않는다'고 돼 있는 만큼 보험금 지급 책임이 없다고 맞섰다.

그러나 법원은 보험사가 보험금을 지급할 책임이 있다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상해 보험에서 '우연한 사고'라 함은 피보험자가 예측할 수 없는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서, 피보험자의 신체적 결함에 기인한 게 아닌 외부적 요인으로 초래된 모든 걸 의미한다"고 밝혔다.

이어 "진료기록 감정에 따르면 아이가 저산소성 뇌 손상을 입게 된 주된 원인은 출생 과정에서 발생한 태변흡입증후군 등으로 추정할 수 있고, 선천적·유전적 질환 등 내부 요인에 의한 것으로 보기 어려운 만큼 보상 대상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가 출산 전부터 태아 보험에 가입해 그때부터 보험료를 납부한 것은 임신 출산 기간에 발생할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며 보험사의 면책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만약 보험사가 임신, 출산에서 비롯된 손해에 면책 사유를 적용해 그에 대한 위험을 인수하지 않으려 했다면, A씨로부터 출산 전 기간에 보험료를 받을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보험사는 'A씨가 보험사의 면책을 인정하며 민·형사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로 합의한 만큼 소송을 낼 수 없다'고도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A씨가 면책을 인정했던 건 아이의 뇌 손상이 보장 대상이 아니라는 보험사 측의 잘못된 안내 때문"이라며 이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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