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시인과 함께읽는 사기(史記)
군주의 성희롱 때문에 두 나라가 망하다허망한 파멸
이흔 기자  |  xionmi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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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13  12: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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莫以今時寵 能忘舊日恩 막이금시총 능망구일은
지금 사랑을 받는다 해서 옛사랑을 잊을 수가 있겠는가 <王維詩 ‘息夫人’>
남편을 죽인 초 문왕에게 잡혀가 사랑받으며 산 식부인의 심사를 읊은 왕유의 시

춘추시대 초(楚)나라는 중원의 다른 제후국들과는 좀 다른 위치에 있었다. 계보로 보면, 일찍이 주나라 초기 문왕을 섬겼고 성왕에 의해 초만 지방을 봉지로 받아 남작이 되었다. 그러나 주나라가 이왕 때부터 혼란스러워지자 초는 주나라로부터 떨어져 독립을 선언했다. 지리적으로 주나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지금의 사천성을 포함한 남쪽지역이다. 시조 웅거(熊渠)는 스스로 선포하기를 “나는 오랑캐 지역에 있으니, 중원 여러 나라들 같은 국호와 시호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큰아들 웅강으로부터 왕으로 부르게 했다. 초나라 스스로가 중원의 제후국들과는 나라의 격이 다름을 천명하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제후국들 쪽에서도 초나라를 오히려 야만족(오랑캐)의 나라로 여겨 중원에 나타나는 것을 꺼려했다.

여러 나라에서 군주의 시해가 유행하던 무렵 초나라가 강성하여 중원을 넘보기 시작했다. 초 무왕(武王)은 제후국인 수(隨)나라를 정벌하면서 존재감을 알렸다. 그러나 주나라는 초를 인정하지 않았다. 초는 스스로 땅을 넓히면서 자존감을 과시하는 전략을 썼다. 무왕의 아들 문왕(文王) 때에 이르러 장강(長江) 한수(漢水) 유역에 있던 군소 국가들이 모두 초나라 위협을 받게 되었다.

초나라가 주요 제후국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아마도 채(蔡)나라와 식(息)나라를 정복한 때부터였을 것이다. 전쟁에는 여러 가지 동기가 있게 마련인데, 초 문왕이 채와 식나라를 정복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좀 색다르다.

진(陳) 제후의 딸들이 예뻤다. 큰 딸이 채나라 군주 애후에게 시집을 간 뒤, 그 동생은 식나라로 시집을 갔다. 식나라로 가기 위해 채나라를 지날 때 채 애후(哀侯)가 그녀를 위하여 융숭한 축하연을 마련하였다. 그런데 애후는 호색가였다. 식부인이 절세미인인 것을 보고는 그녀가 처제라는 사실을 잊은 듯 추근거렸다. 꽤나 괴로웠던지 식나라로 들어간 규는 남편인 식후(息侯)에게 애후의 행패를 하소연했다.

하지만 식은 약소한 나라였다. 자기 힘으로 보복할 방도가 없었다. 식후가 나름으로 꾀를 냈다. 강성해진 초나라의 힘을 이용하여 채나라를 아예 멸망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식후는 초문왕에게 전갈하였다. “대왕께서 채나라를 정벌할 기회가 왔습니다. 우선 대왕께서 저희 식나라를 치는 척하고 출동하소서. 그러면 제가 채나라에 구원을 요청할 터인즉, 채나라가 출동한 뒤에 채로 진격하시면 손쉽게 채를 정복하실 수 있을 겁니다.”

초 문왕은 그러지 않아도 채나라에 본때를 보이고 싶은 참이었다. 주변 군소국들이 모두 초를 섬기는데 채나라만은 제나라의 인척이라는 배경을 믿고 초나라를 외면해왔기 때문이다.
초나라가 출동한 뒤 식후가 거짓으로 채나라에 도움을 청하자 애후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전군을 몰아 출동했다. 동서(同棲)지간이라는 명분도 있었지만 필경 아름다운 처제에 대한 그리움 탓이 더 컸을 것이다. 초나라는 텅 빈 채나라를 공략했고 되돌아온 채나라 군대를 무찔러 애후를 사로잡았다. 애후는 목숨만 부지한 채 초나라에 9년이나 억류돼 있다가 끝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죽었다.

이야기 PLUS
<사기>가 전하는 식부인 사건은 여기까지지만, <춘추좌전>이나 <관자> 등 여러 기록에 그 뒤의 전말이 전해온다. 그에 따르면, 채 애후는 초나라에 잡혀있는 동안 식후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보복을 꾀한다. 초 문공에게 이렇게 고자질했다.

“제가 이때껏 본 가운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은 아마도 식후의 부인 규일 것입니다. 천상선녀가 따로 없지요. 대왕께서도 보신다면 제 말이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솔깃해진 초 문왕은 식부인을 한번 보기라도 하고 싶어서 순시를 핑계로 식나라를 찾아갔다. 식후가 맹주에 대한 예의로 영접하자 문왕은 식부인의 용모를 직접 본 뒤 마음이 동하여 식후를 사로잡고 그 부인을 취했다. 부인은 남편과 식나라를 살리기 위해 문왕의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었고, 문왕의 첩이 되어 두 아들을 낳았다. 그녀는 억지로 두 남편을 섬기고는 스스로 수치스러워 평생 입을 다물고 살았다고 한다. 후일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사람인 한유(韓愈)가 시를 지어 식부인을 추모했다. ‘지금 사랑을 받는다 해서 옛사랑을 잊을 수 있겠는가. 꽃을 보아도 눈물이 그렁그렁, 초왕과는 말도 나누지 않았네(莫以今時寵 能忘舊日恩, 看花滿眼淚 不共楚王言).’

능력 없는 남자에게 천하절색의 아내란 분에 넘치는 복(福)일지도 모른다. 천하의 한량들을 설레게 하는 뛰어난 미모를 가지고 약소한 남편을 둔 여인에게는 그 절개를 지키기도 어려운 게 세상 이치인 듯도 하다. 한 사람의 미녀로 인해 두 나라가 파멸에 이른 이 사건은, 정치적으로는 변방국 초나라가 한수 넘어 북쪽의 제후국들과 어울려 경쟁하며 춘추5패(春秋五覇)의 하나로 등장하는 되는 분수령이기도 했다.

“이때껏 본 가운데 최고의 미녀a는 식후(息侯)의 부인입니다.”
애공의 말에 초 문공은 마음이 동했다.
문공은 순시(巡視)를 구실로 몸소 식나라에 찾아갔다.
과연 넋을 빼앗길 만한 미모였다.

丁明 : 시인 
peacepres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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