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관 문제 인지 못한 채 승인…보험금 과소 축소 책임 보험사에 떠넘겨

금융감독원의 소비자 보호 역량 부족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자살보험금 사태로 촉발된 금감원의 업무 태만 문제가 반복해 지적되면서 이에 대한 비판 여론이 대두되고 있는 상황이다. 금감원이 보험업계 규제 방식을 사전 승인에서 사후 규제 강화로 변경한 현재, 금융당국의 소비자 보호 역량의 문제점과 한계를 진단한다. <편집자 주>

[보험매일=방영석 기자] 금융당국의 완승으로 끝난 자살보험금 사태는 금융감독원의 미흡한 소비자 보호 역량이 드러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금감원은 재해사망특약의 문제점을 인지하지 못한 채 표준약관을 승인함으로써 자살보험금 사태 발생의 빌미를 제공했음은 물론, 해당 문제점을 이유로 표준약관 개정을 요구한 생명보험협회의 지적을 묵살해 사태를 조기 진화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쳤다.

그러나 금감원은 자살보험금 문제가 사회적 논란으로 비화하자 당시 담당자들이 퇴사했다는 이유로 책임을 회피했고, 보험업계에 중징계를 가함으로써 사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였다.

◇ 금감원 늑장대응에서 비롯된 자살보험금 사태
금융감독원은 보험업계를 감독‧감시하고 문제점이 발생하면 규제하는 기관으로 보험시장의 공정한 경쟁을 유도하고 소비자 피해를 구제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금감원은 보험업계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이에 걸맞지 않게 감독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던 사안의 책임을 업계에 떠넘기는 모습을 보였다.

금감원의 중징계 카드에 삼성‧한화‧교보생명 등 대형 생명보험사가 보험금 지급을 결정하면서 일단락된 자살보험금 사태는 이 같은 금감원의 민낯이 드러난 대표적인 사례다.

자살보험금 사태는 지난 2010년 3월까지 사용된 재해사망특약 상품 표준약관이 '가입 2년 후에는 자살 시에도 특약보험금을 지급한다'는 문구가 포함된 채 승인되면서 촉발됐다.

당시 보험업계가 금감원의 승인을 받은 표준약관을 중심으로 모든 보험사가 동일한 약관을 사용해 왔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문제점이 있는 약관을 승인함으로서 자살보험금 사태를 야기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또한 금감원은 약관의 문제점을 인지하고 표준약관을 개정할 것을 요구한 보험업계의 건의조차 묵살하면서 보험사가 재해사망특약 약관을 계속해 사용하도록 방조한 결정적 책임이 있다.

생명보험협회는 실무 작업반을 통해 진행하던 생명보험 약관 개선안을 준비하던 중 재해사망특약의 문제점을 적발했으며 금감원에 해당 표준약관을 개정할 것을 건의했다.
당시 금감원은 재해사망 보험 약관이 문제가 있다고 해서 생명보험 표준약관을 고칠 이유는 없었다는 이유로 생보협회의 건의를 묵살했다. 보험사가 문제가 된 상품의 약관을 스스로 고치면 해결되는 문제였다는 해명이다.

그러나 금감원은 이후 소비자 민원을 통해 재해사망특약이 이중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반복해 알게 됐지만, 보험사가 상품 약관을 고치지 않았음에도 무대응으로 일관해 사태를 키웠다.

금융소비자단체 및 관련업계에 따르면 금감원은 지난 2005년과 2008년 두 차례에 걸쳐 자살보험금 지급 건에 대한 조정사례를 바탕으로 보험사에 행정지도 등을 통해 약관을 정비, 소비자 민원과 분쟁을 최소화 할 수 있었음에도 별도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금감원은 생보협회가 표준약관 개정을 요구했던 시기가 재해사망을 보장하는 상품 판매가 시작된 2001년 12월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자살보험금 문제를 사전에 해결할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자살보험금 사태를 촉발한 재해사망특약이 승인될 당시에는 금감원의 승인을 얻은 표준약관 이외의 약관으로 상품을 만들기 어려웠다”며 “당국이 사용을 허락한 약관인데다 업계의 지속적인 건의에도 재해사망특약을 개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 보험사들은 자살은 재해가 아니라는 업계의 상식이 문제없이 통용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직무유기' 명백하지만…보험업계 제재 강화해 책임전가 급급
금감원은 스스로의 업무 과실로 촉발된 자살보험금 사태가 사회적 문제로 비화되자 보험업계에 대한 중징계를 앞세워 책임을 전가하는데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금감원은 지난 2010년 4월 ING생명을 검사하는 과정에서 재해사망보험금 과소 지급 문제를 인지한 뒤, 최초로 ‘작성자 불이익의 원칙’에 따라 보험사에 미지급된 보험금 차액과 이자를 전액 지급할 것을 강권했다.

당시 ING생명은 금융당국을 대상으로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등 강하게 반발했으며 이후 자살보험금 문제는 삼성‧교보‧한화생명 등 대형 생보사를 포함한 업계 전반으로 확산됐다.

결과는 보험사 CEO를 겨냥한 문책경고와 영업정지 등의 초강력 제재 방침을 앞세운 금감원에 보험사들이 잇달아 백기 투항하면서 보험업계의 참패로 끝났다.

대법원에서 보험사가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은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최종 판결이 나왔지만, 금감원이 행정적 규제 방침을 굽히지 않으면서 보험사들은 금감원의 요구를 완전 수용하는 선택을 했다.

결국 금감원은 태만했던 업무수행으로 발생한 문제점에 대해 결국 책임을 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소비자와 보험업계를 대상으로 사과성명 조차 발표하지 않았다.

과거 자살보험금 관련 사안을 방치했던 금감원의 책임은 보험사와 금감원의 법적 갈등 뒤로 사라졌다. 책임소재를 따질 당시 담당자들이 현재 전원 퇴사했거나 소재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자살보험금 사태를 잉태시켰던 금감원은 이를 대신해 부당하게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보험사를 압박해 소비자의 정당한 권리를 되찾는 정의로운 공공 기관의 이미지를 얻었다.

표면적으로 금융당국의 승리로 자살보험금 사태가 일단락됐음에도 소비자단체와 보험업계에서 금감원에 대한 비판 여론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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