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형사처벌 선처용 목적 확실하면 보험사 면책사유 안돼"

[보험매일=이흔 기자] 평소에 잘 아는 사람이 운전하는 차에 탔다가 운전미숙으로 교통사고가 나면 졸지에 가해자와 피해자 관계가 된다.

그렇다고 그동안의 친분을 생각하면 서로 얼굴을 붉히며 형사책임을 가리기가 쉽지 않다
특별한 사연이 없는 한 가해자는 치료비를 물어주고, 피해자는 가해자가 형사 처벌을 받지 않게 합의서를 써주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이 합의서가 가해자 측 보험사의 손해배상 책임까지 면하게 하는 근거가 될 수 있을까.

단순히 합의서 문구만으로 해석하면 안 되고 작성 목적과 동기, 경위를 면밀히 따져야 한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충북에 사는 A(47)씨는 2014년 6월 24일 이른 아침부터 친구 B씨와 술을 마시게 됐다.

술자리를 끝낸 A씨는 자리를 옮기기 위해 별생각 없이 B씨가 운전하는 차에 올랐다.

차를 몰던 B씨는 급커브길에서 실수로 길가 옹벽을 크게 들이받았다. 당시 B씨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면허 취소 수준인 0.109%였다.

이 사고로 조수석에 타고 있던 A씨는 팔이 부러지고 허리신경에 손상을 입는 등 전치 12주의 부상을 당했다. 치료를 끝내더라도 후유 장해가 남을 것이란 진단도 받았다.

그사이 음주 교통사고를 낸 B씨는 검찰 조사를 받았고, 무거운 형사 처벌이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친구를 걱정한 A씨는 '교통사고로 인한 치상 및 물적 피해에 대해 상호 원만히 합의했기에 민사 및 형사상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내용의 합의서를 작성해 줬다.

이를 검찰에 제출한 B씨는 그 덕에 벌금 500만원에 약식명령을 청구받는 데 그쳤다.

사건이 원만히 마무리되고 병원 치료를 마친 A씨는 B씨의 자동차보험사를 상대로 치료비와 위자료 등 1억1천500여만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자 보험사는 A씨가 B씨와의 합의서를 통해 민사상 청구권을 포기한 만큼 손해배상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맞섰다.

법원은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청주지법 민사3단독 송인혁 부장판사는 이 소송에서 "6천700여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20일 밝혔다.

송 부장판사는 판결문에서 "이 사건의 합의서를 작성하게 된 목적과 진정한 의사, 동기, 경위 등을 종합하면 수사기관에 제출하는 선처용 용도이지 민사상 청구권을 포기해 보험사까지 책임을 면하게 하려는 의사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송 부장판사는 다만 "A씨가 스스로 음주 운전 차량에 탄 경위 등을 고려할 때 신의칙이나 공평의 원칙에 따라 보험사의 책임을 70%로 제한한다"고 덧붙였다.

보험사 측은 1심 판결에 불복, 항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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