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근무시간 보장 불가능…노조 설립 못해 공동대응도 ‘한계’

무한경쟁에 내몰린 보험설계사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수수료 규정에 매여 안정적인 수입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은 물론,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해 근로기준법의 사각 지대에 위치해있는 설계사 수는 40만 명에 달한다. 이에 국내 설계사채널의 비정상적인 운용방식을 진단한다.<편집자 주>

[보험매일=방영석기자] 보험설계사를 둘러싼 갈등은 개인사업자도 근로자도 아닌 이들의 불분명한 신분에 있다.

보험설계사는 명목상 개인사업자이지만 실질적으로 근로자와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특수고용직 근로자’로 최저임금과 근무시간 등 근로기준법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보험설계사들은 보험사와 GA가 선택에 따라 소속 설계사를 1인 GA 형식의 자영업자로 전환하거나 근로자로 전환시킬 수 있도록 정부와 금융당국이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불완전판매 근절, 설계사 채널 정상화에 달렸다
보험설계사 대부분은 오전 8시 소속 지점에 출근해 지역 단장등을 통해 교육 명목으로 2~3시간 교육을 받은 뒤 개별적으로 고객을 방문하거나 신규 고객 발굴 활동에 나선다.

소속 보험사와 GA별로 운영 방식이 상이하긴 하지만 대다수 설계사는 교육에 의무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불참 시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지만 별도의 수당은 지급되지 않는다.

일부 설계사들은 이러한 불이익을 감수하고 오전부터 영업활동에 나서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지점 내 게시판 등을 통해 개별 설계사의 월별 실적이 게시되고 있고 저 성과자에 대한 면담 등 실적압박이 극심한 상황이기 때문에 설계사들이 고육지책으로 영업 활동에 나서고 있다는 설명이다.

결과적으로 설계사들은 하루 12시간 이상 근무하면서도 추가수당은 물론 교통비조차 자비로 해결하고 있는 등 열악한 근무환경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은 설계사가 법적으로 근로자가 아니라는데 있다. 설계사는 개인사업자이면서도 근로자와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특수고용직 근로자’로 기본적으로 ‘사장님’으로 취급받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이들은 1주 52간의 근로시간, 6,030원의 최저임금, 부당해고 제한, 근로조건 명시 등 근로기준법이 규정하고 있는 권한을 보장받지 못한다.

이 같은 상황은 고스란히 설계사의 고용불안정과 저임금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설계사들의 낮은 정착률은 보험사와 GA 등 고용업체들이 이들을 육성하기 보다는 대량으로 모집하는 전략을 추구하도록 만들었다.

고용불안과 박봉에 시달리는 설계사들의 이탈이 잦은 상황에서 신규 설계사들을 제대로 육성하는 방식으로는 투자대비 수익성이 낮다는 판단이 나오기 때문이다.

보험사와 GA는 퇴직금 지급 부담이 없음은 물론, 선지급했던 수수료 또한 저성과자를 대상으로 전액 또는 대다수를 회수할 수 있기 때문에 소속 설계사 해촉에 큰 리스크가 없다.

이에 따라 보험사와 GA들은 외부에서 새로운 설계사를 3~4개월간 영업에 활용한 뒤 저성과자 계약해지 조항을 이용해 정착지원금을 회수, 다시 새로운 설계사를 모집하는 ‘돌려막기’를 통해 설계사 조직을 유지하고 있다.

등록설계사 숫자가 40만에 달하고 대형 보험사가 수만의 전속설계사를 보유하고서도 정작 실제 활동하고 계약을 유지‧관리하는 설계사의 비율은 극히 낮은 원인이 여기에 있다.

설계사들의 잦은 이탈과 낮은 교육 수준은 결국 불완전판매를 양산한다는 점에서 소비자피해 근절을 불가능하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설계사단체는 불완전피해로 발생한 소비자의 금전적 손실을 보전하고 있는 현행 소비자보호 방안은 일시적인 효과를 볼 수 있으나 불완전판매 자체를 근절하지 못하는 미봉책에 불가능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설계사단체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현행 소비자보호 방안은 결국 보험사와 GA의 실적압박과 관리 부실로 나타난 소비자의 금전적 피해를 설계사를 통해 보전하는 방식”이라며 “설계사를 내세워 판매를 독려하다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을 전가하는 이해할 수 없는 행태가 법의 이름을 통해 정당화되고 있는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소비자 보호는 공허한 구호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 “설계사의 신분 명확하게 규정해야”
더욱 심각한 문제는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설계사들이 정작 자영업자로도 취급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점에서 의무적으로 할당하는 교육과 각종 미팅 등으로 인해 정기적으로 지점에 출‧퇴근함은 물론 일별‧월별 실적을 보고하는 일련의 과정을 겪고 있는 설계사들은 현실적으로 근무시간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자영업자와는 거리가 멀다.

근무경력 9년의 설계사 A씨는 “설계사가 법적으로 사장님이라는데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교육을 받고 실적을 채워야하는 사장님이 과연 존재하나”라며 “회사원 이상의 업무강도에 영업사원의 박봉에 시달리고 있는 설계사는 사장이라기보다는 근로기준 혜택을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에 가깝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설계사와 고용사 사이의 근로계약에 준하는 ‘위촉계약서’ 작성 과정에서 이 같은 문제점은 더욱 큰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개별사업자의 입장에서 동등한 위치에서 맺어야 하는 계약임에도 불구하고, 보험사 및 GA가 설계사 사이의 정보의 격차로 인해 대다수 설계사들이 본인의 계약 내용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강압적으로 계약서에 서명하도록 유도하는 경우가 잦다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설계사단체를 중심으로 설계사의 신분을 명확하게 규정할 수 있도록 금융당국과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감독규정 및 특별법 제정 등을 통해 보험사와 GA가 설계사와 위탁계약을 체결할 경우 선택에 따라 1인 GA와 같은 개인사업자 계약을 맺거나 정규직 직원으로 채용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설계사단체 관계자는 “각종 부당행위에 시달리고 있는 설계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설계사를 개인사업자 또는 근로자로 명확하게 규정짓고 각 신분이 보장받는 권한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며 “근로기준법의 사각에 위치한 설계사들이 소모품으로 취급받고 있는 현실이 변화하지 않을 경우 모든 대처 방안은 일시적인 효과만을 거둘 것”이라고 말했다.

◇ 현실성 없는 이상론…대량 해고 일어날 위험 커질 것
반면 보험사와 GA는 설계사단체의 이 같은 주장이 현실성 없는 이상론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각 사별로 수천~수만명의 설계사를 보유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설계사 위촉을 위해 의무적으로 고용 또는 1인 GA 계약을 체결해야 할 경우, 보험업계가 신규 설계사를 모집할 여력이 없을 것이란 분석이다,

특히 일각에서는 재정적 부담에 따른 기존 설계사 대량 해고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40만명의 설계사를 직원으로 채용하거나 1인 GA로 활용해야 한다면 대다수 보험사와 GA는 설계사채널 자체를 포기하거나 미국과 유사하게 브로커 채널 활용을 확대할 것”이라며 “재정적인 부담이 급증할 경우 설계사채널은 중개인 등 타 보험모집 조직에 비해 역량에서도 수익성에서도 경쟁성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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