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급증 우려…美 금리인상시 자본유출 우려도

[보험매일=이흔 기자] 1%대 기준금리는 한국이 단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한국은행의 전격적인 금리 인하는 디플레이션 우려까지 나을 정도로 미약한 경기를 반전시키기 위한 결정으로 풀이된다.

전 세계적으로 통화완화 경쟁이 격화한 가운데 우리만 손을 놓고 있다간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경계심도 커졌다.
 한은은 지난해 단행한 두 차례의 금리 인하와 정부의 전방위 부양책에도 경기가 좀처럼 회복세를 보이지 않자 시장의 일반적인 예상과 달리 신속하게 또 한번의 인하를 단행했다.'

◇ 경기 반전 위한 특단의 대책
한은의 금리 인하 결정은 대다수 전문가의 예상보다 좀 더 이른 시기에 나왔다.

금통위를 앞두고 한국금융투자협회가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채권시장 전문가 92%는 이번 달 금리 동결을 예상했다. 금리를 내리더라도 한은이 다음 달로 결정을 유보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금리를 더 내리면 이미 1천100조에 달하는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빨라지고 미국이 금리 인상을 앞둔 상황에서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컸다.

그럼에도 한은이 금리를 인하한 것은 현재 한국 경제가 처한 상황이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경기 반전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라는 측면이 강하다.

지난해 4분기 한국 경제는 전분기 대비 1% 내외의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됐지만 실제 성장률은 0.4%에 그쳤다.

한은은 작년 4분기의 '성장률 충격'을 딛고 올해 1분기 경기가 반전할 것으로 봤으나 지금까지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1월 산업생산은 전월보다 1.7% 줄었다. 특히 광공업 생산 감소폭(-3.7%)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6년여 만에 가장 컸다. 소비도 3.1% 감소했다.
한국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수출(통관 기준)은 1월과 2월 각각 0.7%, 3.4% 줄었다.

한은은 이달 통화정책방향문에서 "수출이 석유제품 등의 단가 하락으로 감소하고 민간소비·설비투자 등 내수가 부진한 모습을 나타냈다"며 "앞으로 국내 경제는 완만한 회복세를 나타낼 것이나 당초 전망한 성장 경로를 하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올해 경제성장률이 지난 1월 내놓은 전망치인 3.4%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의미다. 작년 성장률은 3.3%였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지난해 두 차례 금리 인하를 했기 때문에 이정도로 버티는 것"이라며 "지금처럼 실물경기 지표가 계속해서 악화되는 상황에선 금리 인하가 필요했고, 추가 인하도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 디플레 차단…원화의 '나홀로 강세' 방지
한국 경제가 디플레이션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점도 금리 인하의 배경이다.

올해 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5%에 그쳐 3개월째 0%대에 머물렀다. 담뱃값 인상분을 빼면 사상 첫 마이너스(-0.06%) 물가였다.

물가 하락이 다시 경제활동 침체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뜻하는 디플레는 한국 경제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현상이다. 일본이 1990년대부터 장기 불황에 빠져 겪었던 게 바로 디플레다.

윤창현 한국금융연구원장은 "1%대 기준금리는 한은이 디플레 시대가 왔음을 인정했으며, 그만큼 경제주체들이 위기감을 느껴야 한다는 뜻"이라며 "이제는 고성장·고물가 시대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한은이 디플레 파이터가 돼야한다"고 말했다.

한은에 앞서 전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들도 줄줄이 자국 화폐 가치를 떨어뜨려 수출 경쟁력을 높이고, 디플레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통화완화에 나선 상태다.

올해 들어 유럽중앙은행(ECB)의 양적완화 결정을 전후로 중국, 인도, 캐나다, 스웨덴, 스위스, 호주 등 18개국이 정책금리를 낮췄다.

주요국의 완화정책으로 유로화·엔화 등 주요국 통화 대비 원화 가치가 오르자 한은도 금리를 낮춰 원화 강세를 완화할 필요성이 커졌다. 국내 기업들의 수출에 '경고등'이 켜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ECB의 완화 정책으로 유로화가 약세를 보이자 지난 1월 대(對) EU 수출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23% 감소했다. 2월엔 감소 폭이 30.7%로 커졌다. 지난 1월에는 일본에 대한 수출도 19.5% 줄었다.

지난달 기준금리 결정을 위한 금통위 본회의에선 "엔화 절하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더는 간과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 두 달만에 뒤집은 경제전망…전망능력 도마에
그러나 이번 금리 인하가 경제 주체들의 심리를 자극해 부진한 경기를 반전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선 의구심이 높다.

소비와 투자가 부진한 것은 구조적 요인 때문이지 금리가 높아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은 "전방위로 경기 부양에 나선다는 방향성 측면에서 금리 인하는 긍정적이지만 효과가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라며 "경기 심리가 상당히 위축돼 있어 인하 효과가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금리 인하로 수요를 촉진하기 어렵다면 디플레 차단이 어려울 것"이라며 "오랫동안 제로금리를 유지했는데도 수요 측이 움직이지 않아 디플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일본 사례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결정으로 한은의 경제전망과 소통 능력에 대한 비판도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한은은 지난 1월에 연간 경제전망을 발표하면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9%에서 3.4%로 대폭 하향하면서도 분기별로는 1%대 내외의 양호한 성장세가 유지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등 선진국 경기 개선과 유가 하락이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기에 올해 경기가 부진할 것으로 보고 있지 않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런 판단을 불과 두 달만에 뒤엎은 것이다.'

◇ 가계부채 증가·자본유출 우려…부작용도 상당
기대 효과에 대한 의구심이 큰 가운데 1%대 기준금리의 가장 큰 부작용으로는 가계부채 급증이 꼽힌다.

당장 지난해 단행된 두 차례의 금리 인하와 정부의 부동산금융 규제 완화 이후 급증한 가계부채가 한층 더 빠르게 늘어날 수 있다.

가계빚은 작년 한 해동안 69조원 급증한 데 이어 올해 1∼2월에도 증가세를 이어갔다. 보통 1∼2월은 가계대출이 줄어드는 달인데 올해는 이례적으로 늘었다.

한국 경제가 '부채의 덫'에 빠져 소비가 더욱 제한될 수 있으며, 풀린 돈이 소비나 투자로 이어지기보다는 부동산시장에 몰려 전셋값을 올리고 집값에 거품이 끼게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박정수 서강대 교수(경제학)는 "금리 인하로 가계부채가 더 늘어날 것이 분명한데, 높아진 원리금 상환 부담을 나중에 금리가 인상됐을 때 어떻게 감당하느냐가 큰 문제"라고 말했다.

미국이 이르면 올해 6월부터 금리 인상을 시작할 수 있는 상황에서 한은이 섣불리 금리를 내려 자본과 환율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내외금리 격차가 줄어든 상황에서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면 풀렸던 유동성이 대거 본국으로 환류하면서 국내 시장에서 자본이 대거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다.

박종규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하반기 이후 미국 금리 인상이 예정돼 있는데, 이렇게 되면 한국도 인상 압박을 받을 수 밖에 없다"며 "금리는 내릴 때보다 올릴 때 저항이 크기 때문에 어려운 상황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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