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정치금융 철폐 없는 금융개혁은 공염불"

[보험매일=이흔 기자] 지난해 금융권을 들썩이게 했던 '정치금융'이 올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치금융 철폐 없는 금융개혁은 공염불"이라며 국내 금융산업의 발전을 위해 정치금융을 근절할 수 있는 방안을 시급히 마련, 시행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우리은행이 신임 사외이사 후보로 선임한 4명 가운데 3명이 정치권 출신이거나 정치권과 관련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정한기 호서대 교양학부 초빙교수는 이광구 우리은행장과 같은 '서금회'(서강금융인회) 출신이다. 최고경영자(CEO)를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사외이사 자리에 같은 사조직 출신이 선임돼 심각한 이해 충돌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10월에 금융권 경력이 없는 정수경 변호사를 상임감사로 선임하면서 정치권의 낙하산 논란을 촉발시켰다. 정 감사는 2008년 총선 친박연대 대변인, 2012년 총선 새누리당 비례대표 후보 출신이다.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은 연초에 지배구조 개선안의 하나로 지주 사장직을 부활시키겠다고 했으나 전직 국회의원이나 대선 캠프 출신을 앉히려는 노골적인 정치권의 공세로 결국 없던 일이 됐다.

KB 내분 사태 당사자로 지목돼 지난해 물러난 박지우 전 국민은행 부행장이 최근 KB캐피탈 사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것도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그는 서금회 회장을 6년간이나 맡았다.

2007년에 결성된 서금회는 박근혜 대통령이 17대 대선 후보 경선에서 탈락하자 이를 안타깝게 여긴 금융권 서강대 동문이 결성한 모임이다.

금융권은 지난해 홍기택 산업은행장, 이덕훈 수출입은행장, 정연대 코스콤 사장, 홍성국 대우증권 사장, 이광구 우리은행장 등으로 이어진 서강대 출신의 '막강 파워'가 다시 영향력을 발휘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애초에 남주하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로 낙점된 것으로 알려졌던 금융연구원장에는 논란이 일자 신성환 홍익대 교수가 내정됐다.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은 연초에 지배구조 개선안의 하나로 지주 사장직을 부활시키겠다고 했으나 전직 국회의원이나 대선 캠프 출신을 앉히려는 노골적인 정치권의 공세로 결국 없던 일이 됐다.

신 내정자는 KB 내분 사태의 당사자인 KB금융 사외이사였으나, 2012년 대선 당시 여권 국민행복추진위원회에서 힘찬경제추진단 추진위원으로 활동한 배경을 기반으로 '영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치권이 노골적으로 금융권 인사에 개입하자 전문가들은 우려를 금치 못하고 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는 "정치금융 철폐 없는 금융개혁은 공염불"이라면서 "정부가 한편으로 금융개혁을 위한 범국민대토론회를 열면서 다른 한편으로 금융권에 낙하산 인사를 내려 보내는 행태는 금융권의 냉소와 보신주의를 더 심화시킬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상빈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KB금융 사장 자리까지 정치권에서 들이밀었다는 얘기가 들려오는데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참담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권에서 먼저 '금융은 금융인에게 맡기고 존중하겠다'고 선언해야 한다"면서 "금융사가 정치권 인사 압력이 들어와도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맞춰주면 결국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말했다.

정치금융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사외이사의 자격요건을 구체화하고 주주소송제 등을 통해 사외이사들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문종진 명지대 경영학과 교수는 "사외이사 자격요건을 구체화하고 강화할 필요가 있다"면서 "사외이사가 거수기로 전락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전문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문 교수는 "사외이사가 안건을 판단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관련 분야의 지식과 경험이 풍부해야 바로 판단하고, 반대 의견도 낼 수 있다"며 "내부 직원도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상조 교수는 "정치적인 이해관계를 통해 금융기관에 낙하산으로 내려온 인사가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의사결정을 하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근본적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국민연금과 같은 기관투자자들이 주주대표소송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정치권 낙하산 인사들이 용돈 벌자는 심산으로 금융사 사외이사로 왔다가 큰 손실을 입는 사례를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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