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매일=임근식기자] 강자가 있고 약자가 있다. 정보를 독점하는 자가 있고 정보에 소외된 자가 있다. 우리는 전자를 ‘갑(甲)’이라 하고 후자를 ‘을(乙)’이라 부른다.

보험사와 보험계약자는 어떤 관계에 놓여 있을까? 보험사의 자산은 모두 보험계약자의 몫이니 보험계약자가 갑이 되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이는 전체 보험계약자와 보험사 이들 둘 만을 두고 견주어 볼 때의 얘기다.

개별 계약자와 보험사와의 관계에서 개별 계약자는 한없이 미약한 ‘을’로서 존재할 뿐이다. 물론 보험사는 이를 인정하려들지 않겠지만.

금융당국은 보험소비자의 민원과 분쟁을 줄이고자 약관을 ‘쉽고 명확하게’ 고치라고 주문한다. 하지만 보험사는 ‘어렵게 애매하게’를 선호한다.

보험사는 자신들과 계약자가 동일한 정보를 공유하고 계약자가 많은 것을 알고 똑똑해 지는 것을 싫어한다. 상품의 약관 속에 담겨있는 ‘불편한 진실’이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정보의 비대칭은 보험사의 강력한 무기다.

그저 약관은 계약자에 형식적으로 건네지는 의무사항 일뿐 그 범위를 넘어서면 피곤해 한다. 마치 일제의 우민화정책을 연상시킨다. 다스리는 상대가 똑똑해 져봐야 좋을 것이 없는 것과 같이...

단언컨대 보험사는 절대 공공의 이익을 말하거나 약자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는다. 그저 영리만을 추구하는 기업일 뿐이다. 그 영리라는 부분은 고객의 계약유치를 통해 이루어지며 고객에게 각종위험이 발생했을 때 보험금이란 형태로 지급되는 위험보험료가 그들의 이익을 줄이게 한다. 때문에 보험금 지급을 최소화시키려한다.

이쯤에서 자살보험금 문제를 다시 꺼내야겠다. 지겹고 짜증날 만치 울겨먹은 테마다. 그래도 해야겠다. 보험사 ‘갑질의 진수’를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약관상 이유를 들어 보험금지급을 청구한 개인들을 대상으로 보험사가 보험금을 지급하지 못하겠다며 대형 로펌을 동원해 법의 심판대에 올려놓은 것이다. 모두가 보험사의 반대편에 서있어도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죽은자와 ‘명분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앞서 언급했지만 보험사에겐 약자에 대한 배려 따윈 없다.

금융당국이 보험소비자와 설계사를 대상으로 한 보험약관 이해도 평가를 회사별로 성적을 매겨 공개키로 했다. 금융당국의 압박도 있지만 내 점수가 공개되는 것에 부담이 작용해 다소나마 보험사의 약관이해도가 높아 질 수는 있다.

하지만 모든 동기는 자발적이어야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남의 손에 이끌려 마지못해 행동에 나선다면 그것은 시늉에 불과하다.

최근 금융당국과 생·손보 관계자들이 세미나를 열어 민원감축을 통한 소비자 신뢰 제고가 보험산업 발전의 주춧돌이라며 소비자를 한껏 치켜세웠다. 빈말이 아니라고 믿는다.

다시 묻는다. ‘갑’은 누구인가?
당연히 계약자가 ‘갑’이라는 답을 얻었다면 소비자 중심으로 사고를 전환하라.
만약 보험사가 ‘갑’이라 생각되면 지금 그대로의 모습을 견지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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