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구체적 추천경로·사유 공시해야"…업계 반발

[보험매일=이흔 기자] 재벌총수가 대기업 계열의 보험, 증권 등 금융사 최고경영자(CEO)와 고위임원을 함부로 임명하기 어렵게 됐다.

부행장 출신들이 같은 금융지주사 계열의 보험사. 증권사, 자산운용사 등에 사장이나 부사장으로 이동하는 것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당장 내달 10일부터 새로운 규정이 적용돼 올해 연말, 내년 초로 예정된 그룹 인사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금융사들은 금융당국의 이런 방침에 대해 "상법 등 관련 법적 근거도 없는 규제를 만들어서 대주주의 권한을 침해하려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해 논란이 일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24일 "입법예고된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이 예정대로 내달 10일 발효하면 이에 적용을 받는 118개 금융회사는 CEO, 부사장 등 집행임원을 선임할 때 추천경로, 추천경력, 추천사유 등을 공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그동안 재벌총수나 그룹 구조조정본부가 그룹내 인물을 중심으로 진행해오던 대기업 계열의 금융사 임원 선임방식에 적지 않은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그간 대기업 계열 금융사 사장, 부사장 가운데는 일부 금융경력과 무관한 인사들이 적지 않았다. 금융지주사 계열의 증권, 자산운용, 캐피탈 등 고위인사도 자본시장 경험이 없는 은행 부행장 출신들로 채워지는 경우가 많았다.

 

모범규준 적용대상인 금융사로 대기업 계열은 삼성그룹의 생명, 화재, 증권, 카드, 자산운용 등이 있으며 한화의 생명·증권·자산운용, 동부의 생명·화재·증권, 현대캐피탈, 롯데캐피탈 등 20곳 가량이 있다.

금융위는 모범규준에서 CEO 승계에 대한 공시 강화 규정을 담았다.

각 금융사 임원후보추천위원회는 통상 3월에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 30일전 금융사가 공시할 연차보고서(annual report)에 이사회에 들어가는 새 집행위원의 구체적인 내용을 담아야 한다.

추천경력에는 지금처럼 학력, 약식 경력이 아닌 구체적인 '경력'을 세부적으로 명시하도록 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경력에는 전에 근무했던 회사, 혹은 보직에서 업무성과 등이 기록되기 때문에 고위 임원의 자질을 미리 판단할 수 있고 판단 결과가 시장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했다.

금융사 임원후보추천위원회를 이사회내에 설치하지 않고 사외이사의 참여 정도를 명시하지 않은 대목도 의미가 있다.
CEO 승계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자격요건을 정하는 임원후보추천위원회가 이사회의 입김을 덜 받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사회에 사외이사가 참여하는 것도 과반수가 아닌 '충분한 수'로 규정한 것도 대주주가 주주대표나 기관투자가, 금융소비자대표, 공익단체 관계자 등을 임추위에 포함할 수 있게 여지를 준 것이다.

그러나 대기업 계열 금융사를 중심으로 금융권의 반발 움직임이 강하게 일고 있다. 몇몇 업체는 이미 법무팀을 중심으로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모범규준의 법적 문제점을 따져 금융위에 전달키로 했다.

익명을 요구한 업체 관계자는 "모범규준에 문제가 많다"며 "주식회사는 주주가 주인이고 주주총회를 통해 주주들이 이사, 대표이사를 임면할 수 있는데, 임원후보추원위원회를 만들라고 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경영권을 무력화하려는 조치"라고 항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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