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시연금에 대한 비과세 혜택 폐지는 당초 정부의 원안대로 내년부터 시행될 모양세다. 기획재정부가 보험업계에서 건의한 내용을 받아드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보험업계는 가입 후 바로 다음 달부터 받는 연금을 보험계약의 중도해지로 간주하겠다는 기재부의 구상에 노후자금인 연금을 중도 인출 개념으로 보면 안 된다는 논리를 내세워 맞섰다. 하지만 기재부는 부자들의 조세회피 행위를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는 상황 논리를 굽히지 않았고, 이에 보험업계는 그렇다면 5억 원이하(삼성생명은 10억 원 주장)의 연금 자산만이라도 비과세 혜택을 줄 것을 요청했지만 이마저도 관철되지 않은 모양이다.

사실 즉시연금은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상품으로 전혀 새로울 것도 없는데 새삼스레 각광을 받고 있는 이유는 베이비붐 세대의 대거 은퇴에 기인한 바 크다. 베이비부머의 선두주자인 1953년생이 이제 60세이고 올해부터 해마다 100만 명가량의 신규은퇴자가 양산될 전망이다. 이들은 산업화의 주인공 역할을 대해왔지만 정작 자신들의 노후준비에는 무방비한 상태로 노후를 맞게 되는 '세대적' 특징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즉시연금이 매력적인 상품이 아닐 수 없다. 한 마디로 서민들의 노후대비책 중 하나인 것이다.

보험업계가 강조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정부의 원안대로 즉시연금에 대한 비과세 혜택이 사라지면 서민들의 노후대비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여기서 정부가 최근 발표한 세제개편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에 따르면 올해까지는 즉시연금보험(종신형, 상속형)을 10년간 해약하지 않으면 이자소득세를 내지 않아도 되지만 내년부터는 10년 이상 유지하더라도 비과세혜택(종신형 4.4% 연금소득세, 상속형 15.4% 이자소득세)을 받을 수 없도록 되어있다. 이렇게 될 경우 서민들에게 즉시연금은 더 이상 매력적인 노후대비 상품일 수는 없다.

상품에 가입한 성향에도 시선을 돌려보자. 보험업계에 따르면 가입금액 1억 원이하 가입자는 전체의 절반을 넘고 5억 원 이하는 무려 90%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사들은 상황이 이러한데 일부 부자들의 조세회피를 문제 삼아 중산층 이하에 세금 부담을 전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강변한다.
물론 보험사가 서민들의 입장에서 이 같은 논리를 전개하고 있는 것만은 결코 아니다. 매월 수천억 원에 달하는 자금이 보험사로 밀려드는데 그 유혹 또한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역마진 논란은 차치하자.

그런데 기재부가 보험업계의 요청을 거절하는 이유가 참으로 해괴하다. 전해진 바로는 내년에 새 정부가 들어서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올해는 그냥 이대로 가자는 것이었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기껏 개정해놓고 내년에 또 보자니.

기재부 입장에서 보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대선 판에 나온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세 후보 모두 경제민주화를 외치고 있으니 추후에 경제관련 법안들이 이들의 입맛대로 어떻게 바뀔지 누구도 장담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세법이야 말할 나위도 없다.

아무리 그렇다고는 하나, 새 정부 출범 몇 개월도 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개정은 왜 하는 것이며, 입법예고를 해놓고 ‘각계의 의견수렴’은 또 왜 하는 것인지. 힘들게 개정을 했다면 당초의 의지대로 밀어붙일 생각은 하지 않은 채 벌써부터 ‘그래봐야 또 바뀌겠지’하며 눈치나 보고 있는 꼴이라니, 정말 가관이 아닐 수 없다. 국가의 녹을 먹는 공무원이 할 소리는 아닌 듯하다.

경제민주화는 구호로서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정부 부처의 소신행정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이민후
본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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