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희의 窓] ‘보험 불가 시대’의 생존 전략

2025-10-08     이창희 상임논설위원

보험은 오랫동안 위험을 분산시켜 사회의 안정을 유지해 온 가장 오래된 금융제도다. 그러나 지금, 그 제도가 흔들리고 있다. 

세계보험연맹(GFIA)은 지난 1일 ‘보험 가입 가능성의 도전에서 기회로: 보호로 가는 길’(Pathways to Protection: From Challenges to Opportunities in Insurability) 보고서에서 ‘보험 가능성(Insurability)의 위기’를 경고했다.

기후재난과 사이버공격, 지정학적 갈등이 겹치며 보험의 기본 전제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문제는 단순히 보험의 손익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복원력(resilience)’에 있는 것이다.

지난해 한 해 동안 전 세계 자연재해 손실액은 3,680억 달러에 달했다. 보험으로 보상된 것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산불 리스크로 주요 보험사들이 주택보험을 중단했고, 유럽 농업보험은 가뭄과 홍수로 정부 보조 없이는 유지가 어렵게 됐다.

GFIA는 이런 현상을 ‘보호 격차’(protection gap)라 명명했다. 2023년 기준 글로벌 보호 격차는 1조 8,300억 달러로, 매년 3% 이상 확대되고 있다. 위험이 개인과 기업을 넘어, 국가 재정과 사회 시스템을 위협하는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GFIA는 보험산업의 생존을 넘어 사회적 안전망 재건의 핵심 원리로 인식(Awareness), 접근성(Accessibility), 적정성(Affordability), 가용성(Availability)이라는 ‘4A 프레임워크’를 제시했다.

첫째, 인식(Awareness) — 국민이 스스로 위험을 인지하고 대비하는 문화를 확산하는 것이다. 일본은 이미 학교 교육 과정에 보험과 금융 교육을 포함했고, 유럽 각국은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보험 인식 캠페인을 강화하고 있다. 보험은 정부의 보조가 아니라 개인의 회복 수단이라는 메시지를 심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접근성(Accessibility) — 보험의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것이다. 브라질의 ‘파벨라 프로젝트’는 지역공동체 내에서 보험설계사를 양성하며 저소득층의 금융 포용을 실현했다. 캐나다는 팬데믹 이후 원격진료(virtual care)를 보험 상품에 포함시켜 의료 접근성을 높였다. 보험은 상품을 넘어, 사회적 기반시설로 진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적정성(Affordability) — 급등하는 보험료는 전 세계적 과제다. 영국의 자동차보험은 1년 새 20% 넘게 상승했고, 호주에서는 보험료의 40%가 세금이다. GFIA는 ‘위험 기반 요율’(risk-based pricing)의 왜곡을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한다. 정부가 정치적 이유로 요율을 제한하면 시장이 왜곡되고, 보험이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반대로 위험 완화 행동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면 지속가능한 구조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호주의 ‘산불 회복력 앱’(Bushfire Resilience App)은 주택의 방재 수준을 평가해 보험료를 인하하는 대표적 사례로 꼽는다.

넷째, 가용성(Availability) — 재보험시장의 위축과 대형 리스크 확대로 인해 보험 자체가 사라지는 지역이 늘고 있다. 이에 미국의 FAIR Plan, 일본의 지진공동보험, 프랑스의 공공–민

간재해보상제도는 협력 모델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GFIA는 “정부 보조에 의존하기보다, 인프라 투자와 데이터 공유로 위험을 줄이는 방식이 근본적 해법”이라고 강조한다.

GFIA 보고서는 ‘보험산업 혼자서는 더 이상 위험을 감당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

기후, 재난, 사이버 리스크는 초국가적이고 복합적이다. 따라서 보험사가 단독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영역은 정부와의 리스크 분담이 필수적이다. 정부는 인프라와 세제, 교육정책으로 보험의 토대를 강화해야 하고, 보험사는 기술혁신으로 효율과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이 협력이 바로 ‘미래 보험 생태계’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