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자동차‧실손보험 가격에 금융당국 관여
금리 인상에 암묵적 예정이율 인상까지 압박

“이제 보험료 조정도 보험사가 자율적으로 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최근 자동차보험과 실손의료보험 관련 금융당국과 당정의 보험료 조정 압박에 대해 보험업계 관계자가 한 말이다.

올해 의무가입 항목인 자동차보험과 제2의 건강보험으로 불리는 실손보험의 내년도 보험료 조정에 대해 금융당국뿐만 아니라 당정에서까지 개입이 있었다.

자동차 보험료는 내년 2월 후반부를 기점으로 상위 보험사들이 2%, 중소형사는 최대 2.9%까지 보험료를 인하하기로 했다.

보험료 인하 근거는 고물가 시대에 코로나19 확산 이후 손해율이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니, 국민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손해보험사들도 손해율을 근거해 내년도 차보험료 인하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문제는 손보사들이 인하를 예정한 수준과 금융당국과 당정의 보험료 인하폭에 대한 입장이 다르다는 점이다.

손보사들은 당초 당국의 요구에 맞춰 1%대 인하를 가늠했다. 그동안 손해율이 안정적이었지만, 연말 악화 가능성도 전망될뿐더러 지난해보다 전반적인 수준이 높다는 점을 고려해서다.

하지만 금융당국과 당정의 입장은 달랐다. 점유율이 낮아 타사 대비 양호한 수준의 손해율을 유지하고 있는 메리츠화재와 롯데손해보험이 2%대 중반 인하를 추진하면서 대형사도 발을 맞추라고 강요했다.

대형 손보사들은 결국 이 같은 압박에 2% 인하를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금융당국은 크리스마스 이전에 확정 발표하면서, 각 손보사별로 정해진 시간에 보도자료도 배포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내년도 실손보험료 조정에서도 금융당국의 관여는 여전했다. 내년 실손보험료는 1세대 평균 6%, 2세대 평균 9%, 3세대는 14% 오를 예정이다.

현재 실손보험 손해율은 올 상반기 기준 약 127.9%에 달한다. 세대별로 다르지만 1세대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높아지는 구조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현재 손해율을 반영한 보험료 조정은 매년 21%씩 이뤄져야 실손보험이 정상화될 수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금융당국이 소비자 물가 안정을 위해 최대한 낮은 수준의 인상 요구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상반기 중에는 고금리 상황에서 생명보험사 보장성보험 예정이율에도 간접적으로 인상 압박이 있었다.

금융당국이 보험요율 조정에 관여할 법적인 근거가 없는 만큼, 예정이율 조정 계획을 살피면서 암묵적인 압박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보험업법 제129조(보험요율 산출의 원칙)에 따르면 △보험요율을 지나치게 높게 하지 말고 △보험요율이 재무건전성을 해칠 정도로 낮지 않게 하며 △보험요율이 계약자 간 부당하게 차별적이지 않도록 하고 △자동차보험은 보험금과 그 외 급부와 비교해 공정하고 합리적인 수준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보험사가 통계를 바탕으로, 적정 수준의 요율 산정을 자율적으로 할 수 있고, 그렇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올해 금융당국의 보험요율 조정 관여는 이전과 비교해도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이뤄졌다는 게 업계의 목소리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보험사들이 같은 보험 항목에 대해 보험료를 조금만 인상해도 담합의 꼬투리가 잡힐까 노심초사하고 있다”며 “하지만 금융당국과 당정의 빗발친 요구로 보험료를 동일한 수준으로 내린다는 건 이 또한 담합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보험사들은 통계를 기반해 요율을 변경하고, 자체적으로 해결이 되지 않으면 전문 기관인 보험개발원에 검증을 맡기기도 한다.

최근 금융당국의 자동차보험, 실손보험에 대한 가격 조정 관여는 또 다른 담합을 야기했고, 정부가 이를 묵인해다는 걸로 보일 수 있다.

보험사가 사회 안전망의 기능을 수행하고, 장기 리스크를 떠안고 있는 만큼 가격 조정을 신뢰하고 자율성을 믿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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