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신 수석

몇 년 전 교차로에서 승용차가 버스를 충돌하여 버스에 타고 계시던 할머니가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새벽이라 양쪽 신호등이 모두 점멸등이었으나, 승용차는 대로를 직진 중이었고, 버스는 소로에서 나오던 길이었다. 이 경우 대로를 직진하던 승용차에게 도로주행 우선권이 있으므로 버스가 가해 차량이 되고 버스운전자가 유족과 합의를 보아야 한다. 그런데 피해자로 보였던 승용차에서 제출한 블랙박스가 상황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블랙박스 영상에는 신호등, 전봇대 등 주변 풍경이 시간대별로 남았고, 이 블랙박스 분석으로 사고 당시 속도를 추산할 수 있었는데 승용차가 제한속도를 무려 30km나 초과한 과속 중이었다. 추정속도 계산은 국과수가 아니더라도 보험회사나 도로교통공단에서 할 수 있다.

최근 교통사고 조사·분석의 약 80%에서 블랙박스 영상이 첨부된다고 한다. 그러나 블랙박스에서 확인 불가능한 사고 순간의 기록은 EDR(사고기록장치) 데이터를 통해 추출할 수 있다. EDR 장치는 원래 차량 제조사가 사고 시 에어백과 안전벨트 작동 여부를 체크하기 위해 내장한 장치였으나 급발진 등 차량결함분석에 사용되었고, 최근에는 주요 사고조사 분석에서 사용되고 있는데, 사고 당시 운전자가 어떤 조작을 했는지 정확히 확인할 수 있다.

사고 당시의 자동차 주행정보와 운전자 조작정보를 저장하는 장치에는 다음의 3가지가 있다.

1. 영상기록장치(블랙박스)

초당 8~30프레임으로 GPS 위치정보와 사고 영상을 저장하며 사고원인 규명에 사용된다. 동영상에 보이는 이동거리를 시간으로 나누면 사고 당시 주행속도를 계산할 수 있다. 여객자동차운수법 개정으로 여객자동차는 영상기록장치 설치가 2019년 9월 19일부터 의무화되고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수사, 재판 등의 경우가 아니면 유출이 금지된다.

2. 자동차 사고기록장치(EDR: Event Data Recorder)

사고기록장치(EDR)는 에어백제어 컴퓨터나 엔진제어 컴퓨터에 내장되어 장착되는데, 충돌 비행기 블랙박스와 같은 역할을 하고 보통 자동차 변속기 레버 아래에 있다.

EDR의 기록정보는 자동차관리법에 의해 15개 필수항목과 30개 추가항목으로 구분하고 있으며, 충돌 전 5초(충돌 후 0.3초) 동안의 자동차 속도변화, 제동/가속페달, 조향핸들각도, 엔진회전수(RPM), 안전벨트 착용 상태, 에어백의 전개정보 등 각종 사고정보와 운행정보가 0.5초 단위로 기록된다. 이를 분석하면 옆에서 앉아있는 동승자보다 사고내용을 더 잘 알 수 있다. EDR 장치는 모든 외제차와 최근에 출고된 국산차량에 내장되어 있으며, 충돌로 에어백이 작동한 경우는 EDR 데이터가 비휘발성 메모리에 영구저장이 되어 사고의 원인을 분석하고 검증할 수 있게 해준다.

3. 디지털 운행기록장치(Tachograph, 타코메다)

일반 승용차량에 내장된 EDR 데이터가 있다면, 사업용자동차(택시나 버스, 화물자동차)에 의무적으로 설치되는 장치에는 ‘운행기록장치(Tachograph)’가 있다.

이 운행기록계에는 GPS 위치정보로 이동 경로, 사고 전 주행자료, 운행시각, 거리, 과속 여부, 사고 직전 주행속도 등의 데이터 값이 1초 단위로 기록되어 6개월 이상 보관된다.

블랙박스 등장으로 상대방의 일방과실이나 신호위반을 입증하기 쉬워졌지만,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고 후 가족들이 경찰서로 가서 사고 당시 블랙박스를 보고 나면 일시적으로 미친 사람처럼 된다. 사랑하는 가족이 차량에 충격되어 튕겨 나가거나 바퀴 아래로 윤과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생생하게 본다면 누구든지 격분하게 되고, 정신적 트라우마가 생길 수 있다. 가족이 불의의 사고를 당하더라도 가급적 사고 동영상은 보지 않기를 권한다. 만약에 사고 영상을 본다면 차를 운전하든, 길을 걷든 극도로 주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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