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매일=이흔 기자] 반도체 관련 부품 업체에서 근무하다가 혈액암에 걸려 숨진 노동자가 사망 이후 약 6년 만에 산업재해 승인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4일 인권단체 반올림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은 지난달 29일 혈액암으로 숨진 노동자 A(사망 당시 52세) 씨의 유족이 고용노동부 산하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산재 불승인 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근로복지공단이 이번 1심 판결에 따라 산재 승인을 하면 A 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재보험의 유족급여와 장의비 등을 받을 수 있다. 공단이 항소할 경우 상급법원의 판결을 받아야 한다.

2011년부터 반도체 관련 전자부품 제조업체에서 근무한 A 씨는 2014년 혈액암의 일종인 '비호지킨 림프종' 진단을 받고 수술을 한 지 보름 만에 숨졌다. A 씨는 평소 음주·흡연을 하지 않았고 건강에 특별한 이상도 없었다.

A 씨의 유족은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했으나 공단은 A 씨가 담당한 '펀칭' 공정이 화학물질을 취급하지 않는 데다 다른 공정에서 사용하는 유기용제 등에 노출됐더라도 그 기간이 짧고 역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등의 이유로 산재 승인을 거부했다.

이에 A 씨의 유족은 공단 처분의 취소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이 청구를 인용한 것이다.

법원은 A 씨가 펀칭 전후 공정에서 사용한 유해물질에 노출됐을 수 있다고 봤다. A 씨가 근무한 업체는 층별로 공조 시스템과 공기 재순환 장치 등을 가동했으므로 한 곳에서 발생한 유해물질이 다른 곳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반올림은 "질병의 의학적 원인이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은 사정이 있더라도 곧바로 법적 인과관계를 부정할 수는 없다고 본 판결"이라며 "근무 환경의 위험에 관한 정보를 사업장이 독점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노동자가 이를 밝힐 수 없는 사정을 적극적으로 고려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A 씨의 사례에서 공단은) 피해자에게 엄격한 입증을 요구하고 피해자가 입증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산재를 불승인한 것"이라며 "사회보장제도로서 산재보험의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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