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걸러낸' 중복가입자, 보험사기 조장 우려…"단기성과 위주 영업 폐단"

[보험매일=김은주 기자] 올해 초 보험사들이 경증치매까지 보장을 확대하고 진단금 수천만 원을 주거나 평생토록 생활비를 지급하는 등 치매보험 시장이 과당경쟁 양상으로 치닫자 업계 내 우려가 극심했다.

이후 금융당국 제동을 걸면서 치매보험 상품 판매 열풍은 한풀 꺾였지만 당초 우려했던 문제점이 속속 현실화되는 분위기다.

◇ 급성장한 치매보험 시장, 함께 커진 ‘걱정거리’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치매보험은 보험업계 효자상품이었다.

치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이 기간 보험사들이 기존 중증치매 중심에서 경증치매로 보장을 확대한 치매보험을 경쟁적으로 출시하면서 폭발적으로 판매 실적이 증가했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전체 치매보험시장은 지난해 초회보험료 기준 약 233억 원 규모로 전년 대비 3.5배 증가했다. 특히 손해보험사의 판매 실적은 약 46억 원으로 6.5배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과거 중소보험사 중심이던 치매보험 시장에 올해 들어 DB손해보험, 한화생명, 삼성생명 등 대형사들이 가입 문턱을 낮추고 보장 금액을 높인 신상품을 들고 참전하면서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 (자료제공=유동수 의원실)

올해 3월 기준 치매보험 보유계약 건수는 377만건으로 2018년말 대비 약 88만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치매보험 상품의 흥행은 곧 수많은 우려를 함께 낳았다.

경증치매 중 경도(CDR1점)의 경우 증상에 비해 보장금액이 지나치게 높게 설정돼 있는데다 보험사 간 중복가입도 막아두지 않아 보험사기 등 가입자의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수 있는 허점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또한 경증치매 위험률에 대한 통계치가 정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보험사들이 감당하기 힘든 손해율을 낳을 수 있다는 점과 치매 정도를 측정하는 기준이 개개인 의사마다 달라 분쟁의 소지가 크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결국 금융감독원이 향후 문제 발생의 소지가 높다는 판단하에 대대적인 치매보험 약관 개선에 칼을 빼 들면서 보험사들도 하나둘 슬그머니 보장 내용을 축소하는 등 자사 치매보험 상품에 대한 재정비에 나서야만 했다.

◇ 단기성과 위주 영업전략 폐단 ‘도마 위’

보장 내용이 축소되면서 과열됐던 시장도 자연스럽게 제 자리를 찾아가고 있지만 단기성과 중심 영업행태가 남긴 후폭풍은 이제부터 시작될 전망이다. 그 중 하나가 중복가입자 문제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감원으로부터 받은 치매보험 가입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치매보험 중복가입자는 총 87만4000명에 달한다.

이중 6건 이상 중복가입자는 3920명이며, 10건 이상 중복가입자도 130명에 육박하는 상황이다. 보장금액 1억원 이상 고액가입자 31만6000명 가운데 2억 원을 상회하는 가입자도 2만명에 이른다.

다시 말해 여러 보험사의 치매보험 상품에 동시 가입한 사람이 치매 진단을 한 번 받게 되면 진단금으로만 억 단위의 금액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보험사기 조장 우려가 나올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초기 치매보험 시장 선점을 위해 과당경쟁이 붙은 상황에서 가입자 정보를 보험사들끼리 공유하지 않은 점은 업계 내에서도 뒤늦게 후회하는 부분이다.

손보사 한 관계자는 “워낙 업황이 어렵다 보니 블루오션 시장을 찾고 있던 상황에서 치매보험 시장을 잡기 위해 강력한 영업 드라이브를 걸게 됐다”며 “그 과정에서 상품을 만들게 된 의도와 달리 경쟁적으로 판매가 이뤄졌고, 상품 니즈가 확실한 중복가입자들을 걸러내지 않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유동수 의원은 올해 국감에서 “보험사의 단기성과 위주 영업전략과 소홀한 인수심사는 향후 불완전판매와 소비자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일부 보험사 상품의 경증치매 보험금 과다 보장, 경증치매 진단시 의사의 주관적 판단 개입 등으로 인해 보험사기 위험도 커지고 있다”며 개선방안 마련을 촉구했다.

저작권자 © 보험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