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반발에 개정안 통과 미지수…기약없는 기다림

[보험매일=김은주 기자]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 제도 도입을 간절히 바라는 소비자들과 보험사의 기약없는 기다림이 계속되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제도 개선을 권고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매년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공회전만 거듭하는 모양새다.

◇ 소비자·보험사 간소화 요구 ‘한목소리’

국내 가입자 수가 약 3400만명을 넘어선 실손보험은 명실상부 ‘제2의 건강보험’으로 불리며 국민들의 든든한 우산 역할을 해내고 있지만, 그 이면에 크고 작은 잡음과 논쟁이 끊이지 않는 상품이기도 하다.

그중 하나가 바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문제다.

국민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비급여 항목과 본인 부담금을 보장해 주는 실손보험은 다른 보험상품에 비해 활용도가 높다보니 소비자들이 보험금을 청구하는 횟수가 빈번할 수 밖에 없지만, 청구 절차가 단순하지 못한 것이 문제다.

비싼 발급비용과 까다로운 보험금 청구절차는 특히 소액청구가 많은 실손보험의 특성상 많은 소비자들이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며 권리를 포기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시민단체 ‘소비자와 함께’ 실태조사 결과, 지난해 4월 기준 전체 실손보험 가입자 가운데 32.1%만이 보험금을 청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액이라도 한푼이 아쉬운 소비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실손보험 청구가 간단해지길 바랄 수 밖에 없다.

금융소비자연맹 관계자는 “제자리걸음만 반복하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중요한 민생 문제”라고 꼬집었다.

소비자 뿐만이 아니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문제를 해결하는 건 보험업계 숙원 사업이기도 하다.

보험금 청구 과정이 쉬워지면 소비자들이 그동안 포기하던 소액 청구가 늘어나 낙전 수입을 노리는 보험사들이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라 오해하기 쉽지만 오히려 보험사들도 소비자와 한 뜻으로 간소화를 원하고 있다.

개별 청구로 인한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고 전산화로 진료기록의 투명성을 제고하는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은 물론, 보험산업의 신뢰도를 높이고자 하는 대승적 차원에서도 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미 일부 보험사는 개별적으로 대형병원들과 제휴를 맺고 인슈어테크를 활용한 보험금 청구 간소화를 부분적으로 시도 중이다.

한 손보사 관계자는 “실손보험 청구 절차가 간소화 되어 소액 보험금 청구가 늘어난다 하더라도 보험사 입장에서 전혀 걱정할 일이 아니다. 마땅히 지급해야 할 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오히려 전산화로 진료기록이 투명해져 병원의 과잉진료나 보험사기를 방지하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 의료계 반발에 20대 국회서도 ‘지지부진’

현재 국회에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내용을 담은 보험업법 개정안 두 건이 문턱을 넘지 못한 채 계류 중이다.

더불어민주당 고용진·전재수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해당 개정안은 병원이 환자의 진료내역 등을 전산으로 직접 보험사에 보내도록 하자는 내용이 주요 골자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도입의 발목을 잡는 걸림돌로 지목되는 대상은 바로 의료계다. 의료계는 보험사 청구 거절 꼼수 문제를 지적하고, 개인의 진료 정보 유출 문제 등을 우려해 법안 처리를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7월 성명서를 통해 “보험사와 아무런 법적 관계도 없는 의료기관이 왜 국민의 민감한 질병 정보를 보험회사에 직접 전송해야 하는가”라며 “실손보험 가입자의 진료비 내역과 민감한 질병 정보에 대한 보험사의 진료 정보 축적의 수단으로 악용될 개연성이 높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그러나 의료계를 제외한 다른 이해관계자들은 현재 만연한 일부 의료계의 과잉진료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도입으로 인해 투명하고 객관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또한 복지부 등 정부 부처가 의료계 눈치만 살피는 사이 20대 국회에서도 해당 법안 처리가 무산된다면 내년 총선 정국 이후 재논의가 이뤄지기까지 최소 2~3년이 걸릴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고용진 의원은 “이번 국정감사에서 국무조정실장을 상대로 실손보험 청구간소화와 관련하여 추가 법 개정 소요가 있는지 따져볼 예정”이라며 “국민이 편리하게 소액의 보험금이라도 받을 수 있게 하루 빨리 절차가 개선되도록 앞장 서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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