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직후엔 장애여부 몰라"…'사고때부터 소멸시효 시작' 2심 파기환송

[보험매일=이흔 기자] 한 살 때 교통사고를 당해 5년 뒤 언어장애나 실어증 등이 발병한 경우 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시작된 때는 사고 당시가 아니라 발병 증상이 구체적으로 나타난 때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일반적으로 교통사고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시효는 사고 당시부터 시작된다고 인정된다. 하지만 유아기에 사고를 당해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구체적 피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소멸시효가 시작되는 시점을 가급적 뒤로 늦춰 손해배상청구권을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는 게 이번 판결의 취지다.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김 모(15) 군이 손해보험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부에 돌려보냈다고 8일 밝혔다.

김 군은 만 1세 때인 2006년 3월 교통사고를 당했다. 당시 사고로 차량 밖으로 튕겨 나가 도로 위에 떨어졌고, 뇌 손상을 입었다. 동승했던 어머니가 현장에서 사망할 정도로 피해가 큰 사고였다.

사고 후 간헐적으로 간질 증상을 보였다가 상태가 호전되는 상황을 반복하던 그는 2011년 11월 언어장애와 실어증 진단을 받자, 이듬해 3월 가해 차량 보험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재판에서는 김 군이 보험사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지, 아니면 소멸시효가 완성될 정도로 시간이 지나 배상을 청구할 수 없는지가 쟁점이 됐다. 민법은 손해가 발생한 사실을 안 날로부터 3년이 지나면 더는 보험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한다.

1심은 손해배상 청구권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판단해 "보험사가 1억1천7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반면 2심은 "김 군(법정대리인 포함)이 교통사고가 발생한 당시에 손해와 가해자를 알았을 것인데, 그로부터 3년이 지난 뒤에야 손해배상을 청구했으므로 손해배상청구권은 시효가 완성돼 소멸했다"며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대법원은 2심 판결을 다시 뒤집었다.

재판부는 "교통사고 직후에는 김 군이나 그 법정대리인으로서도 장차 상태가 악화하면 어떠한 장애가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짐작할 수 있었을지언정, 발생할 장애의 종류나 장애의 발생 여부를 확실하게 알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어 "만 1세 때 교통사고를 당해 만 6세 때 처음으로 언어장애 등의 진단을 받은 경우에는 사고 당시 피해자의 나이, 최초 손상의 부위 및 정도, 치료 경과나 발현 시기, 최종 진단 경위나 병명 등을 고려해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언제 현실화한 손해를 알았는지를 심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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