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매일] 대한민국 국민이 누리는 복지 중 손꼽히는 두 가지가 의료보험과 국민연금이다. 일정한 금액을 매월 지급하다가 병에 걸렸을 때, 그리고 노년이 됐을 때 혜택을 받는다.

그런데 두 제도는 1990년대 외환위기 이후 다른 길을 걸었다. 의료보험이 더 내고 더 받는 쪽으로 나아갔다면, 국민연금은 더 내고 덜 받는 쪽으로 변했다.

지난봄에 386세대를 비판한 논문을 발표한 이철승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신간 '노동-시민 연대는 언제 작동하는가'에서 의료보험이 2000년대 이후 한국에 급속히 들어온 신자유주의 물결에도 어떻게 보편적 복지를 실현했는지 분석했다.

미국에 오랫동안 머물며 노동운동을 연구한 저자가 영어로 쓴 이 책에서 주목한 대상은 노동조합이다.

그는 "노조는 다른 자발적 조직과 다르게 생산 활동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국가 강제력에 맞서 가장 강력한 대중운동을 조직할 수 있는 조직된 시민 권력이자 대안적 세계관을 형성하는 구심점"이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노동조합을 중심에 두고 시민단체와 정당을 다른 축으로 삼았다. 노동조합과 시민단체 관계는 '배태성', 노동조합과 정당 관계는 '응집성'으로 각각 설명하면서 '배태된 응집성'이라는 개념을 고안했다.

이어 배태성과 응집성 유무를 바탕으로 네 가지 유형을 나눴다. 노조가 배태성과 응집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개혁 추진이 아예 불가능하지만, 배태성과 응집성을 유지한다면 보편적 사회정책 개혁을 이룰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만일 응집성만 있다면 국가 지지를 받아 선별적 개혁을 추구하고, 배태성만 있다면 온건한 개혁을 끌어낸다는 것이 저자 주장이다.

그는 김대중 정부 이후 민영화 조치가 지속하는 가운데 의료보험이 보편적 개혁에 성공한 데 대해 배태성을 내세우면서 "노동운동가와 보건 의료 전문가들은 위협·징벌 역량과 정책 지식을 교환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1990년대 형성된 노동-시민연대 네트워크는 격동의 2000년대에도 유지됐고, 연이은 보수 정부 아래에서도 보편적 건강보험 체제를 지켜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관련 노조가 전통적으로 허약했고, 역사적으로도 시민단체와 연계를 조밀하게 발전시키지 않았기에 정책 변화가 일어났다고 진단한다.

저자는 "노조는 시민사회 조직과 연계로 지역사회의 강력한 지지와 더 많은 운동자원을 얻는다"며 "이런 환경 안에서 노동권은 시민권으로 확대되고, 소상공인·가정주부 등 비취업 인구를 포괄하는 다양한 범주의 노동자 이익이 '노동의 권리'로 인정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후마니타스. 박광호 옮김. 544쪽. 2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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