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관 만능주의 '소비자 보호 정책이 소비자 피해로'

[보험매일=방영석 기자] 금융당국의 소비자 보호 정책이 현실적인 측면을 도외시한 결과 보험 시장에서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소비자 보험금 환급을 목표로 추진했던 어린이보험 개선안과 민원 집계 기준 고수 등의 정책이 오히려 대다수 소비자들의 부담을 키우게 된 것이다.

보험업계는 금융당국 소비자 정책의 핵심이 된 경직된 약관 만능주의가 불합리한 보험금 지급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 소비자 보호 정책이 소비자 피해로

11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이 추진하던 어린이보험 개선안과 민원 및 약관 개선 등의 소비자 보호 정책이 다수의 소비자에게 피해를 입히고 있다.

소비자 보호를 목적으로 도입됐던 정책들이 지나치게 완고한 금융당국의 기준 적용과 보험업계의 반발로 또 다른 소비자들의 피해를 양산하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금융감독원이 어린이보험 상품의 태아 특약에 잠재되어 있던 부조리를 해결하려 추진 중인 개선안이 이 같은 부작용이 드러난 대표적인 사례다.

금감원은 최근 어린이보험 상품 가입자가 납부하는 보험료를 태아 시점과 출생 이후 시점으로 분리하는 개편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는 어린이보험 상품은 지금까지 태아 시기부터 산모가 상품에 가입하도록 허용했으나 보장 대상에서는 제외해왔기 때문이다. 출생 이후에 수익자가 될 수 있는 약관 조항이 화근이었다.

문제는 보험사가 보험료를 출생 이전부터 받아왔다는 점이다. 태아 시기에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보장을 받을 수 없음에도 소비자는 보험료만 납부했던 셈이다.

보험사는 이 같은 문제를 보장 기간을 태아시기 보험료를 납부했던 만큼 연장하거나 납부 시기를 줄이는 것으로 해결해 왔지만, 중도해지자는 여전히 보험료만 내고 보장을 받지 못했던 상태다.

금감원이 어린이보험의 보험료 납부 시점을 이원화 한 결과 이 같은 문제 역시 해결됐지만 더큰 부조리가 발생했다. 태아시기에 납부하는 보험료는 신설됐지만 그만큼 출생 이후의 보험료가 줄어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초 금감원은 태아시기에 납부한 보험료에서 사업비를 제외한 모든 보험료를 중도해지자에게 지급하도록 조치하는 방안을 고려했다.

그러나 일부 특약의 경우 태아시기의 건강 상태에 영향을 받는다는 보험사의 주장을 받아들인 결과 소비자가 돌려받을 수 있는 보험료는 대폭 줄었고 오히려 4월부터 어린이보험에 가입하는 소비자는 현재 대비 태아보험료를 별도로 추가 납부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결과적으로 중도해지자를 구제하기 위한 금감원의 소비자 보호 정책이 신규 태아보험 가입자의 보험료 부담을 무겁게 하는 딜레마가 발생한 것이다.

소비자 단체 관계자는 “금융당국은 소비자를 보호한다는 취지에서 상품 개선에 나섰음에도 결국 보험사의 요구를 받아들여 개선안이 반쪽짜리로 전락했다”며 “특정 소비자는 물론 모든 소비자를 고려한 정책이 추진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완전무결 약관 마련…현실성 적어

보험업계가 꾸준히 건의해왔던 민원 제도 개편안에 대한 금융당국의 부정적인 인식 또한 소비자 보호의 정책이 현실성이 없다는 보험업계의 비판을 받고 있다.

보험업계는 일부 반복·악성 민원과 단순 변심에 의한 해지 민원의 경우 민원 건수에서 제외할 것을 요구했으나 금감원은 소비자의 구제를 이유로 이를 반복해 거부해왔던 상태다.

민원 건수에 따라 금감원의 압박을 받는 보험업계는 부득이하게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소비자에게도 합의를 시도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나가지 않아야 할 보험금 지급은 결국 대다수의 선량한 소비자들의 보험료 인상의 원인이 된다는 점에서 금감원의 완고한 태도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태다.

보험업계는 금융당국의 소비자 보호 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약관 만능주의’를 꼽고 있다. 상품설명서 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사업비 공제 등의 사실을 포함해 상품의 모든 내용을 약관에 포함해 제작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소비자가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명확한 약관을 제작하라는 주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보상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려면 법률 용어 등을 통해 이중 해석의 여지를 차단해야 하나 이는 약관의 가독성을 역으로 떨어트리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에 비해 정보가 적고 약자인 소비자를 우선으로 구제하겠다는 금융당국의 소비자 보호 정책 추진 취지 자체는 보험업계가 반발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면서도 “모든 내용을 약관에 명시하면서도 소비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간단하게 제작하라는 요구는 지나치게 이상적이며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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