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시인과 함께읽는 史記
군자가 코뿔소처럼 떠돈다. 누구 탓인가.공자(9)
이흔 기자  |  xionmi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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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07  10: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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君子固窮 小人窮斯濫矣 군자고궁 소인궁사남의
군자는 곤궁해도 자신을 지키나 소인은 곤궁하면 탈선한다. (<史記>孔子世家)
제자 자로가 ‘군자도 이처럼 곤궁할 때가 있습니까’라며 화를 내자 공자가 답하여

정(鄭)나라에도 공자가 머물 곳은 없었다. 자격이 모자라는 군주와 그 자리를 빼앗으려는 찬탈, 모반이 여러 나라에서 잇달아 일어나고 있었다. 공자는 남쪽으로 발길을 돌려 작은 나라인 진(陳)나라로 들어갔다. 진나라 민공은 선량했으나 소박한 사람이었다. 공자를 존중하면서 예의를 갖췄지만, 해박한 선비를 대접하는 것 이상으로 중용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제자 3인의 마음이 다 달랐다.

그 무렵 오(吳)나라가 초나라를 공격하면서 중원은 전화(戰火)에 휩싸였다. 머문 지 3년째에 진나라도 오나라의 공격을 받게 되었으므로 공자는 제자들을 거느리고 채(蔡)로 피신했다. 일행은 도중에 오나라와 초나라 군사들에게 차례로 붙들려 곤경을 겪기도 했고, 양식이 떨어져 며칠씩 굶주리기도 했으며, 병으로 쓰러지는 제자도 있었다.

공자는 그때마다 거문고를 켜면서 시와 노래로 제자들을 달래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도덕과 학문이 높은 사람이라도 곤경에 빠지면 아무 도리가 없군요.”
성질 급한 자로(子路)는 이제 지쳐버렸다.

공자가 꾸짖어 말했다. “군자는 곤궁해도 절조를 지키나, 소인은 곤궁하면 탈선하느니라.”
그리고는 자로를 돌아보며 조용히 질문을 던졌다. “시경에 ‘코뿔소도 아니고 호랑이도 아닌 것이 광야에서 헤매고 있다’라고 하였는데, 과연 나의 정치적 이상이 틀린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왜 이렇게 방랑하며 고생해야 하는가. 네 생각은 어떠하냐.”

자로가 대답했다. “우리가 충분히 어질지 못해서가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믿지 못하는 거겠지요. 우리가 충분히 지혜롭지 못해서 가만두질 않는 거 아니겠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그렇지 않다. 만약 세상이 어질고 지혜로운 사람을 반드시 받아들인다면 백이숙제가 왜 수양산에서 굶어죽었겠으며, 은(殷) 비간은 심장이 도려져 죽었겠느냐.”

자공(子貢)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자공이 조심스레 대답했다.
“선생님의 도가 너무 크기 때문에 천하의 어느 나라도 받아들이질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상의 목표를 그들 눈높이에 맞도록 조금 낮추시면 어떻겠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어떤 농부가 씨뿌리기에 능하다 해서 수확도 잘하는 것은 아니며, 솜씨 좋은 장인이라 해도 모든 사람의 요구에 부합하는 기물만 만들 수는 없는 법이다. 군자가 도를 잘 닦아 대중 앞에 논리정연하게 제시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그것을 받아들이지는 못한다. 지금 자신의 이상에 대하여 스스로 믿음을 갖지 않고 스스로 이상을 낮추어서까지 남에게 수용되기만을 바란다면, 그것은 네 자신이 원대하지 못한 것이다.”

마침 안회(顔回)가 들어왔으므로 공자는 또 같은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의 뜻이 지극히 크기 때문에 어떤 군주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 뜻을 꺾지 않고 여전히 큰 뜻을 실현할 길을 찾아 분투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누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 무슨 큰 문제입니까.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그럴수록 군자의 면목은 더욱 드러나는 것입니다. 명확한 정치적 이상이 없다면 우리들의 치욕이겠으나, 명확한 정치적 이상이 있는데도 세상이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것은 세상을 다스리는 자들의 치욕일 뿐입니다.”

비로소 공자가 혼쾌하게 웃었다.
“오오 안자여. 만일 자네가 대부호가 된다면 나는 자네의 집사가 되고 싶네.”
큰 뜻을 나눌 수 있는 제자가 있음에 공자는 보람과 만족을 느꼈던 것이다.

저무는 공자, 비로소 빛나는 이상

공자는 위나라로 되돌아갔다. 물론 하루아침에 돌아간 것은 아니다. 도중에 초나라 소왕에게 초청되어 곤궁을 면하기도 했다. 그러나 공자를 등용하려는 초 소왕의 마음을 초나라 대부 자서(子西)가 돌이키게 했다. “공자를 등용했다간 그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말 겁니다.”

어느 날 접여라는 기인이 공자 앞을 지나가며 노래를 불렀다.
“봉아, 봉아, 운도 참 풀리지 않는구나. 지나간 잘못이야 할 수 없다마는, 다가오는 잘못은 피할 수 있으리. 그만 두어라 그만 두어. 권세란 죄다 위험한 거란다.”

공자는 다시 위(衛)나라로 돌아갔다.

위나라에 있는 동안 공자의 제자들도 이리저리 흩어지기 시작했다. 자로는 위나라 군주 출공에게 출사했고 염구와 자공, 유약 등은 고향인 노나라로 가서 계강자에게 등용되었다.

계강자는 계환자의 아들이다. 공자의 제자들을 등용한 것은 계환자의 유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환자는 임종을 앞두고 지난날을 후회하면서 아들에게 말했다.

“우리 노나라가 중흥할 기회가 꼭 한 번 있었다. 그러나 공자를 떠나가게 함으로써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혹 기회가 닿는다면 꼭 공자를 다시 모셔오도록 해라.”
공자 제자들의 능력이 뛰어났으므로 공자에 대한 계강자의 동경은 더욱 간절해졌다.

공자는 그 때 위나라에서 대부 공문자의 도움 요청을 받았으나 오히려 위나라를 떠나려는 참이었다.

“새는 나무를 선택할 수 있지만, 나무가 어찌 새를 택할 수 있겠는가.”

공자는 한때 스스로 새가 되어 둥지 틀 나무를 찾아 헤매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스스로 큰 나무가 된 것을 깨달았다. 마침 계강자의 부탁을 받은 자공과 염구가 찾아와 귀국을 청했다. 공자는 노나라로 돌아갔다. 노나라를 떠난 지 14년만이었다. 이후 공자는 주역을 탐독하고 기록의 정리에 힘썼다. 그가 편안히 임종에 든 것은 5년 뒤, 향년 73세였다.

송나라 정나라, 진(陳)과 채로 떠돌았다. 전쟁터를 지나고, 일주일을 굶고, 병으로 쓰러지기도 했다.
“도덕과 학문이 높은 사람이라도 곤경에 빠지면 아무 도리가 없군요.” 성질 급한 자로는 이제 지쳐버렸다.
 

▲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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