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역별 갈등, 교차임명으로 돌파 시도…'사표거부'에 리더십 상처

[보험매일=이흔 기자] 금융감독원이 예산 삭감에 이어 인사 후폭풍과 공공기관 지정 논란 등으로 뒤숭숭하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취임 후 첫 임원인사를 진통 끝에 지난 18일 단행했다. 은행 출신을 보험에, 보험 출신을 은행에 앉혔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윤 원장은 다음달 13일까지 팀장급 이하 실무진 인사를 마치기로 했다.

이번 인사는 금감원이 최근 몇 년 새 겪은 '내우외환'을 드러내면서 고질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도 다시 들춰냈다.

최흥식 전 원장의 다소 무리했던 부원장보 전원 교체, 최 전 원장의 낙마에 이은 김기식 전 원장의 또 한 차례 낙마로 윤 원장은 1년도 안 돼 3번째 수장을 맡게 됐다. 그만큼 임원인사에서 운신의 폭이 좁았다는 게 대체적 평가다.
가뜩이나 복잡한 인사 방정식은 은행·증권·보험으로 나뉜 금감원의 '권역 논리'에 부딪혀 더 꼬였다.

금감원은 옛 한국은행 은행감독원을 주축으로 증권감독원, 보험감독원, 신용관리기금이 합쳐져 1999년 출범했다. 통합감독기구 출범이 올해 20년째를 맞았지만, 권역별 알력은 여전하다.

주도권을 쥔 한은 출신들은 임원인사에서 늘 점유율 절반에 육박하는 우위를 차지했다. 증감원 출신도 독자적 영역을 구축했다. 보감원 출신은 한은 출신에 치이기 일쑤였다.

금감원 관계자는 "영역 폐쇄적인 보감원 풍토가 자초한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최근 임원인사에서 보감원 출신 설인배 부원장보(보험담당)가 일괄사표 제출 요구를 거부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한은 출신 이성재 부원장보가 후임으로 임명됐지만, 설 부원장보는 사실상의 보직해임을 감수하면서 윤 원장에 저항하고 있다. 17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윤 원장은 은행·보험담당 임원을 교차 임명하는 방식으로 돌파를 시도했다. 보감원 등 다른 권역 출신을 은행담당 부원장보에 임명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윤 원장은 첫 인사부터 리더십에 작지 않은 상처를 입게 됐다. 3주일 넘게 이어진 '인사 내홍'은 금감원의 현주소를 여실히 드러냈다.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선 금감원 은행 출신과 보험 출신의 '네 탓' 비방전이 볼썽사납게 벌어졌다. 서로를 향해 '업계와 유착됐다'는 프레임을 씌웠다.

인사 문제와 조직 내 갈등 구도는 거칠게나마 봉합됐지만, 금감원의 공공기관 재지정 심사를 앞두고 다시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

기획재정부 공공기관운영위원회는 지난해 초 보류된 금감원의 공공기관 지정 여부를 이달 30일 다시 정한다. 경영공시 강화, 채용비리 개선, 경영평가 강화, 방만경영 개선 등 4가지 보류 사유 중 '상위직급 감축'을 골자로 한 방만경영 개선이 사실상 유일하게 남은 쟁점이다.

금감원은 상위직급을 줄이라는 감사원 권고대로 전체 직원 1천980명(1∼5급) 중 임원 및 1∼3급(851명) 비중을 현재의 43%에서 30%로 당장 줄이는 게 어렵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몇년치 급여를 주고 상위직급을 내보내는 대규모 명예퇴직이 유일한 해법인데, 예산권을 쥔 금융위원회가 허락하지 않는다"며 "결국 4급 직원들을 계속 승진에서 누락시켜야 한다. 그게 가능하겠나"라고 했다.

공공기관으로 지정되면 기재부가 금감원의 예산·경영에 대해 감독·평가 권한을 갖는다. 금융위가 금감원을 감독하는 구조에서 금융위와 기재부가 각각 인사와 예산을 감독하는 구조로 바뀌는 것이다.

금감원의 공공기관 지정 문제는 채용비리를 계기로 터져 나왔다. 채용비리 등 임직원 비위가 자꾸 적발된 탓에 감시·견제를 강화하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은 것이다. 2009년 공공기관 해제 이후 10년 만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당시 공공기관 해제의 명분은 금융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금융감독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였다"며 "금융회사 감독·검사가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는 토양이 만들어지는 게 근본적 해법"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이 직면한 위기의 배경에는 기득권 추구, 태생적 한계, 관료 우선주의도 있지만, 금감원을 통해 금융에 개입하는 정치적 논리가 자리 잡고 있다는 인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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