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계약 16만 건…소 제기 수백명, 소멸시효 지나면 끝인데

[보험매일=손성은 기자] 즉시연금 사태를 둘러싼 보험사와 계약자, 금융감독원의 갈등이 극에 달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소비자 보호 강화를 외치며 일괄구제를 권고한 금감원과 이를 거부한 생보업계의 갈등은 소비자와 보험사의 소송전으로 비화했다.

갈등 발생의 핵심은 과거 생명보험사들이 판매한 즉시연금 상품의 약관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다.

금감원과 민원을 제기한 계약자들은 약관상 상품 설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입장인 반면 보험사는 산출방법서 등을 통해 설명의무를 다했다 주장하고 있다.

가장 먼저 일괄지급 권고를 거부한 삼성생명은 이미 민원 제기 계약자를 대상으로 소송에 나섰고 이어 한화생명과 교보생명 역시 이를 준비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래에셋생명까지 금감원의 즉시연금 일괄지급 권고 거부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알려져 사태가 더욱 확산될 조짐이다.

금감원 역시 소송지원 제도 등을 통해 간접지원에 나섰고 일부 계약자들은 이번 주 소비자단체를 통한 집단소송에 나설 예정이다.

보험사와 계약자, 금감원이 한 치도 물러서지 않으며 결국 즉시연금 사태는 장기화가 불가피하게 됐다.

최근 보험사와 계약자간 보험금 지급 갈등과 관련해 계약자들이 일방적인 열세에 놓여 있는 만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즉시연금 사태를 놓고 대립하고 있는 생보사와 계약자 양측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소송은 계약자에 일방적으로 불리하다는 지적이다.

거대 자본과 법무팀을 보유하고 있는 보험사와 계약자간 소송전의 결말은 빤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올 상반기 기준 생보업계 보험금 지급, 청구 관련 소송에서 보험사의 전부 승소율은 80%를 상회했다.

여기에 장기간의 시간이 소요되는 재판에 지쳐 계약자들이 재판을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보험업계는 삼성생명을 상대로 민원을 제기했던 A씨 또한 삼성생명의 소 제기 이후 분쟁조정 신청을 취하한 것은 재판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었을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그렇다면 즉시연금 사태와 관련한 소송에서 계약자가 승소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생보사가 금감원 권고대로 일괄지급을 결정할 경우 지급해야 할 액수는 9,545억원. 이 중 2,084억원은 이미 시효가 만료됐고 최대 지급 금액은 7,460억원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즉시연금 상품 가입자들은 16만 명에 달한다. 이 중 소비자단체와 연계해 집단소송에 돌입한 계약자는 수백 명에 불과하다. 분쟁조정건수 또한 1,200여 건이다.

상법상 소멸시효는 3년이다. 관련 소송이 개시될 경우 소멸시효가 중단되지만 소송 인원이나 분쟁조정신청 건수를 고려할 때 대다수의 계약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기회조차 갖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생보사가 즉시연금 과소지급 금액을 일괄지급하라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즉시연금 사태의 책임은 약관을 작성한 보험사와 이를 사전에 심사한 금융당국 양측 모두에 있다는 것이 명확하다.

다만 금융당국의 소비자 보호 기능 강화 행보는 그리 적극적으로 보이지 않아 보인다. 즉시연금 사태 초기 일괄지급을 강하게 권고하던 금감원은 더 이상 찾아 볼 수 없다.

소송지원 제도 등을 통한 간접지원에 그치고 있는 금감원은 어느새 사태에 한 발짝 물러선 모양새다.

전체 16만 건 계약 중 수백명에 그친 소송 인원, 분쟁 조정 1,200여 건. 나머지 계약자들은 왜 문제 제기를 하지 않고 있을까?

복잡한 금융상품. 그 중에서도 약관과 상품 구조가 가장 복잡하다는 게 보험상품이다.

대다수 계약자들이 자신이 가입한 상품에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이를 인지하기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설사 문제가 발생한다 하더라도 자신이 해당되는지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 금융당국은 과거보다 더 소비자 보호에 더욱 힘을 쏟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 적지 않다.

보다 더 적극적으로 즉시연금 사태와 관련한 정보와 문제 해결을 위한 수단을 홍보해 계약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기회의 폭을 넓힐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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