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관 협의체 구성, 의원입법 발의…"언제까지 팩스·우편접수하나"

[보험매일=이흔 기자] 병원·약국 등에서 결제하면 실손의료보험금이 사실상 자동으로 청구되도록 하는 방안이 급물살을 타게 됐다.

약 3천300만명이 가입해 '제2의 건강보험'으로 불리는 실손보험의 보험금 청구 절차가 간편해질 것으로 기대되지만, 의료계 설득이 관건으로 꼽힌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보건복지부가 꾸린 공·사보험 정책협의체는 이 같은 '실손보험금 청구 간편화'를 의제로 삼아 실무협의체를 만들기로 했다.

진단서와 진료비 계산서 등 필요한 서류를 일일이 떼고, 이를 다시 보험금 청구서와 함께 인편·우편이나 팩스로 보내는 번거로움을 없애자는 취지에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자기부담금을 제외하면 소액인 경우, 소비자가 직접 서류를 떼서 우편·팩스나 설계사를 통해 접수하는 게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라 청구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이를 간소화하는 시스템 마련을 정책협의체 의제로 삼았다"고 밝혔다.

 실제로 보험연구원이 2천440명을 면접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실손보험금 청구 사유가 발생했는데도 청구하지 않은 비율이 입원 환자 4.1%, 외래 환자 14.6%, 약 처방 20.5%로 조사됐다. 이들은 청구 금액이 소액인 데다 절차가 번거롭다는 이유로 청구를 포기했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2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정책협의체를 구성해서 불편 해소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근본적으로 보험금 청구를 포함해서 전산화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보였다.

흥국생명, 교보생명 등 3∼4개 생명보험사의 경우 콜센터로 보험금 청구를 문의하면 팩스로 요청토록 유도하고 있어 "보험금 청구율을 낮추려는 꼼수"라고 자유한국당 성일종 의원이 국감 때 비판한 바 있다.

보험연구원 조용운 연구위원은 "IT 강국을 자부하고 핀테크 활성화를 추진하는 나라에서 언제까지 이런 '원시적 방법'으로 보험금을 청구해야 하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보험금 다이렉트 청구'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피보험자가 진료비를 병원 등 요양기관에 지급하면 피보험자를 대리해 요양기관이 보험사에 보험금을 전산으로 청구하도록 하는 체계다.

이 같은 움직임에 맞춰 국회에서도 관련 입법이 추진된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고용진 의원이 대표 발의한 보험업법 개정안 등 관련 의원입법안들이 계류된 상태다.

고 의원은 개정안에 대해 "보험계약자와 피보험자 등이 요양기관에 진료비 계산서 등의 서류를 보험사에 전자적 형태로 전송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도록 하고,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요양기관이 그 요청에 따르도록 하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전송 업무를 위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 의원은 이를 토대로 다음 달 중 소비자단체와 보험업계, 의료계 등이 참여한 토론회를 열어 법 개정 관련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다.

보험사 입장에선 보험금 청구가 간편해지는 만큼 보험금 지급액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지만, 대부분 소액 청구인 데다 전산시스템만 갖춰지면 오히려 불필요한 비용을 줄일 수 있어 환영하는 입장이다.

관건은 의료계 설득이다. 현재 의료법상 환자가 자신의 진료정보를 확보해 보험사에 제출하는 방식만 가능할 뿐, 보험사가 병원 등 요양기관에서 직접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난색을 보이고 있다.

다만 의료계가 실손보험금 청구 간소화에 소극적인 배경은 값비싼 비급여 진료비가 고스란히 노출되고, 진료수가 인하 요구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손해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금 지급 심사에 필요한 정보만 넘어오도록 시스템을 만들면 된다"며 "의료계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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