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시인과 함께읽는 사기(史記)
공신 가신 척실까지…분란 끝에 왕이 죽다진(晉) 여공
이흔 기자  |  xionmin@naver.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06.11  09:21:55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盜憎主人 民惡其上 도증주인 민악기상
도둑은 집주인 마주치길 꺼리고 아랫사람은 윗사람 마주치기를 꺼려한다. <左傳>
너무 강직하여 직언을 좋아하는 진 대부 백종에게 아내가 충고하는 말 가운데


진(晉)나라의 공실은 쇠퇴하고 있었다.

경공이 병으로 죽은 뒤 여공(厲公)이 즉위했다. 극지(郤至)와 난서(欒書) 중항언(中行偃)등이 중신이었다. 극씨 일족인 극지 극기 극주의 위세가 당당하여 사람들은 그들을 삼극이라 불렀다. 삼극은 백종(伯宗)을 참소하여 죽여버렸다. 백종은 제후가 신임하던 중신이다. 일찍이 경공 시절 도성의 양산(梁山)이 무너져내렸을 때 경공은 황급히 백종을 찾았다. 백종은 산의 흙이 썩어 자연히 무너진 것일 뿐 괴이한 징조는 아니라고 하면서도 군주가 근신하며 나라 살림을 잘 추슬러야 재난이 없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백종은 강직하고 직언을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 직언이란, 그것을 달게 받아들이는 군주를 만나면 빛이 나지만, 그것을 두려워하는 시대를 만나면 오히려 부메랑이 되기도 한다.

평소 백종의 아내가 말하기를 “도둑은 집주인 마주치기를 싫어하고 아랫사람은 윗사람 마주치기를 두려워합니다. 당신은 직언을 좋아하니 필경 재난을 당할 것이오(盜憎主人 民惡其上 子好直言 必及於難)”라고 충고하곤 했다. 백종은 아내의 충고에 인격자인 대부 필양과 교분을 맺었다. 그 덕에 자신이 죽음을 당할 때 아들 주리를 외국으로 빼돌려 대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눈엣가시를 제거한 극씨들의 세상이 된 것도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여전히 여공을 향하여 충성경쟁을 벌이고 있는 경쟁자들이 있었다.

정(鄭)나라가 진을 배신하고 초나라와 동맹을 맺은 사건으로 인해 전쟁이 일어났다. 진이 정을 치려할 때 초나라는 공왕이 직접 군대를 끌고 와 접전을 벌이게 되었다. 언릉이란 곳에서 마주친 진과 초는 격렬한 전투를 벌였는데, 초 공왕이 눈에 화살을 맞아 후퇴했다. 진의 승리였다. 초나라 자반은 이 패배 후 자결했다.

진나라는 승리를 거두고 돌아왔지만, 제후 측근의 실력자들 사이에 암투는 더욱 뜨거워졌다. 범문자는 언릉에서 돌아오자 축관을 불러 ‘내가 일찍 죽게 빌어달라’고 명했다. “우리 주군은 교만하고 사치한데 오늘 초나라를 이겼으니 더욱 교만하게 될 것이다. 장차 화가 닥칠 터이니, 나를 사랑한다면 차라리 빨리 죽어 화를 피할 수 있도록 기도해다오.”

과연 여공은 더욱 교만해졌다. 많은 첩을 두었는데, 그 여자들에게 잘 보이려고 여자의 형제들을 높은 자리에 기용하려 했다. 이를 위해 먼저 기존의 대부들을 파면하려고 하자 대부들은 모두 자기 지위에 대해 위협을 느꼈다.첩의 오빠들 중에 서동(胥童)이란 사람이 특히 오만하여 극지가 이를 갈았다. 그러나 극지가 먼저 죽었다. 극지의 독단을 경계하던 난서가 그를 초나라와 내통하며 역모를 꾸미고 있다고 모함했기 때문이다.

극씨들이 이를 알고 먼저 여공을 공격할지 여부를 놓고 다투는 사이에 서동이 먼저 1백 명의 갑옷 입은 군사들을 이끌고 가 그들을 살해했다. 서동은 극씨들의 시신을 여공이 있는 곳으로 메고 간 뒤, 그 자리에서 또 다른 세력가인 난서와 중항언을 또 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여공이 허락하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대부 세 사람의 시신을 보았으니 차마 더 이상 죽일 수가 없구나.” 그러자 서동의 일파인 교는 “두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장차 화가 임금께 미칠 것입니다”라며 나라를 떠나버렸다.

여공은 난서와 중항언에게 사죄를 명하며 대부의 지위를 복원시켜주었다. 두 사람은 “죽는 한이 있어도 임금의 은덕을 잊을 수 없습니다”라고 사죄하고 돌아갔으나 얼마 뒤 여공을 공격하여 감금해 버렸다.

이야기 PLUS

여공은 감금된 지 6일 만에 죽었다. 난서와 중항언 등이 사람을 주나라 도성에 보내어 옛 양공의 후손인 공자 주(周)를 맞아들여 새 군주로 세웠다. 도공(悼公)이다.

도공은 즉위 직후 백관에게 명하여 백성의 불필요한 노역을 없애고 채무를 탕감하며 법을 관대하게 하여 죄인을 사면했다. 숨어있는 인재들을 등용하고 불필요한 지출을 줄여 재정을 바로잡았다. 세금을 가볍게 하고 농번기에 백성의 부역을 없애 농사에 방해되는 일이 없게 했다. 비로소 민심이 돌아와 나라가 안정되었다.

여공이 시해된 것은 리더로서의 지도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군주가 자기중심 없이 이 사람의 말과 저 사람의 말에 줏대 없이 흔들리면 지도력이 사라진다. 군주의 뜻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오판하는 사람들이 저마다 실세인 척 설쳐대기 때문이다. 권력의 갈래가 많아지면 사회가 혼란해진다. 정책은 오늘과 내일이 다르고, 군주의 말은 오늘과 내일이 다르게 된다. 백성들은 임금으로부터 나오는 발표를 어느 하나 믿을 수 없게 되며, 밖의 나라들도 그 나라의 외교정책을 믿지 못한다. 국가의 신용이 떨어지는 것이다. 진나라 주변의 나라들은 “진나라에 권문이 많으니 누구를 믿어야 할지 알 수 없다”며 상대하기를 어려워했다.

게다가 설사 권력을 가진 자라도 감히 자신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게 되어 서로 위기감을 가지고 견제하게 된다. 처음에는 대부들이 군주를 끼고 서로 공격하여 죽고 죽였지만, 끝내는 군주 자신이 목숨을 잃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하루아침에 대부가 셋이나 죽었으니 차마 더는 죽일 수 없다.”
여공이 난서와 중항언을 사면하였다. 두 사람은 “은덕을 잊지 않겠습니다”하고 돌아갔으나 곧 여공을 공격하여 감금해버렸다.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보험매일 공식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finsnews)
< 저작권자 © 보험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이흔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최근인기기사
1
메리츠화재 노스코어링 운용 전략 중단 검토
2
유병자 보험 시장 다시 들썩
3
생보사, 매출확대 GA채널에서 ‘답 구하기’
4
보험업계, 허위 설계사 모집 공고 줄어든다
5
생보사들, 즉시연금 일괄지급 차일피일
6
리치앤코-케어랩스, 보험서비스 개발 MOU 체결
7
생보사 즉시연금 1조원 "터질게 터졌다"
8
KB손해보험 GA 전용 영업지원 앱 '내 손안의 KB' 출시​
9
메리츠화재, GA채널 고공행진 ‘멈칫’
10
금리상승-매출감소-각종 규제에 생보업계 ‘골머리’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마포구 마포대로 44, 808호(도화동,진도빌딩)  |  대표전화 : 02-786-7991  |  팩스 : 02-786-7990
정기간행물ㆍ등록번호 : 서울아00428  |  등록일자 : 2007. 9. 6  |  발행인·편집인 : 이민후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민후
Copyright © 2011 보험매일.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fin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