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시인과 함께읽는 사기(史記)
광대 우맹이 임금을 속여 깨우치다楚 장왕-청백리 손숙오
이흔 기자  |  xionmi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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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01  10: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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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得相而不喜 三去相而不悔 삼득상이불희 삼거상이불회
세 번 재상이 되고도 기뻐하지 않고, 세 번 밀려나면서도 아쉬워 않다 (순리열전)
초나라 재상 손숙오가 세 번 등용되고 파면되면서도 마음이 한결같았다는 말

위대한 군왕 뒤에는 현명하고 충성스럽게 보좌하는 신하가 있기 마련이다. 초 장왕의 정치를 밝게 한 사람 중에는 손숙오(孫叔敖)가 유명하다. 그가 벼슬이 없는 일개 처사로 있을 때 재상 우구가 천거하여 재상이 됐다. 학식과 지혜를 갖췄을 뿐 아니라 청렴결백한 사람이었다. 어려서 한번은 길에서 머리 둘 달린 뱀을 마주쳤는데, 숙오는 즉시 그것을 죽여 땅에 묻어버렸다고 한다. 머리 둘 달린 뱀을 보는 사람은 빨리 죽는다는 속설이 있었기 때문에 내버려두면 다른 사람이 또 그것을 보게 될까 걱정했던 것이다.

손숙오가 재상이 되자 관리들은 평화로이 단합되고 시정의 기풍이 맑아졌다. 국가는 백성에 대한 간섭을 줄였으나 백성들은 스스로 법을 잘 지켰고, 관원들은 사취하는 자가 없었으며 도적도 줄어들었다. 겨울에는 산의 나무를 잘라 땔감을 만들거나 여름에는 강물을 이용하여 운반하는 일을 자유롭게 허용하니 백성들이 모두 편익을 얻게 되면서 각자의 생활에 만족감이 높아졌다. 요즘 말로 행복지수가 올라간 것이다.

한번은 왕이 화폐(조개 모양의 동전)가 너무 가볍다고 생각하여 크기를 키우게 하였다. 백성들이 무거워서 사용하기를 꺼리니 상거래가 불안정하게 되었다. 시장 관원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숙오는 즉시 장왕에게 보고하여 동전의 크기를 예전과 같이 환원시켰다.

백성을 위한 정치를 시행했기 때문에 백성들이 모두 그를 사랑했고 관원들도 그를 따랐다. 재상직에 세 차례 오르고 세 차례 파면되었는데, 오를 때 크게 기뻐하지 않고 물러날 때 후회하지 않았다(三得相而不喜 三去相而不悔).

장왕은 우맹(優孟)이라는 재간꾼을 곁에 두었다. 본래 소리를 하는 사람인데 변설과 재담으로써 왕을 즐겁게 하고 또 풍자를 통해 깨우치는 사람이었다.

왕이 아끼는 말이 있어서 늘 수놓은 비단옷을 지어 입히고 마굿간 대신 화려한 집과 침대를 만들어주었으며, 대추와 마른고기를 먹였다. 왕의 애마는 너무나 호강했던 나머지, 마침내 비만으로 죽고 말았다. 왕은 심히 슬퍼하면서 말에게 대부의 예로 장사지내도록 명을 내렸다. 반대가 있을 것에 대비하여 왕은 ‘감히 말을 가지고 간하는 자가 있으면 중죄로 다스리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때 우맹이 대궐마당으로 들어가 큰 소리로 곡을 하였다. 왕이 놀라서 이유를 물으니 우맹은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임금께서 좋아하시던 말님이 돌아가셨으니 당연한 예의로써 슬퍼하며 우는 것입니다. 초나라의 국력이 넘치는데 말님에게 해주지 못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대부의 예로 장사지내는 것으로는 모자랍니다. 왕께서 지극히 아끼시는 말님이니 대부가 아닌 왕자의 예로 장사를 지내야 옳습니다.”

생각해보니 우스운지라 장공은 결국 특별한 장례식을 취소시켰다.

숙오는 우맹의 인품을 알아보고 마음에 두었다. 숙오가 병들어 죽을 때가 되자 아들에게 유언을 남겼다. “내가 죽으면 너는 반드시 가난해질 것이다. 정 어렵게 되거든 우맹을 찾아가서 네가 손숙오의 아들이라고 말하거라.”

숙오는 재상이었음에도 워낙 청빈하여 그가 죽고 몇 년 안에 과연 그 아들은 빈궁해졌다.

아들이 우맹을 찾아가서 인사하자 우맹은 말했다. ‘그대는 멀리 가지 말고 기다리라.’

그리고는 손숙오가 생전에 입던 의관을 입고 그와 비슷한 걸음걸이와 말투를 흉내내며 돌아다녔다. 매일 그렇게 하니 사람들은 우맹을 보면 손숙오를 떠올리게 되었다. 어느 날 왕이 베푸는 연회에서 우맹이 숙오의 차림으로 나아가 잔을 올렸다. 장왕은 깜짝 놀랐다.

“그대는 숙오가 아닌가. 지금 모두가 그대를 그리워하니 돌아와 정사를 돌봐주시오.”

우맹이 “아내와 먼저 상의를 하고 나서 사흘 뒤에 돌아오겠습니다.”라도 대답했다.

사흘 뒤 우맹이 찾아와서 말했다. “아내가 반대하옵니다. 말하기를, ‘초나라의 재상은 할 게 못된다. 손숙오와 같은 사람은 충성과 청렴을 다해서 나라를 다스렸고 덕분에 왕은 천하의 패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가 죽자 그 아들은 송곳하나 꽂을 땅이 없고 빈곤하여 스스로 땔감을 구하러 다니고 있다. 손숙오와 같이 되려고 재상을 한단 말인가.’라고 하였습니다.”

왕이 놀라서 손숙오의 유족들을 불러 400호의 봉토를 내려 제사를 이어가게 하였다.
 

이야기 PLUS

<사기>의 열전 가운데는 ‘골계(滑稽)열전’이 포함돼 있다. 골계란 말을 잘하고 유창하여 막힘이 없음을 뜻한다.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풍자 해학 유머와 같은 뜻이다. 권력 주변에는 대개 거대담론이나 격식을 지킨 진지하고 견고한 말들이 가득하다. 견고한 말과 말이 부딪치면 마찰이 일어난다. 왕실의 이야기꾼은 그러한 마찰을 줄이거나 누그러뜨리는 존재로서 고대와 중세 동양과 서양의 역사에 자주 나타난다.

19세기 미국의 개척자 중 한 사람인 헨리 와드 비쳐는 말했다. “유머감각이 없는 사람은 스프링이 없는 마차와 같다. 길 위의 작은 조약돌에 부딪칠 때마다 예외 없이 삐걱거린다.”

큰 제국을 완성하고 큰 세계를 원활하게 경영한 제왕들 곁에는 유능한 관료와 무사들만 있었던 게 아니다. 반드시 이러한 현자들이 광대 무당 악사 변사 시인 등의 형태로 존재하면서 호걸들 사이에 생길 수 있는 경쟁을 누그러뜨리는 감초 역할을 하였다.

“아내가 반대하옵니다. ‘초나라 재상은 할 게 못된다. 숙오는 충성과 청렴을 다해 나라를 다스렸으나 그 아들은 겨우 땔감이나 팔러 다니고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정해용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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