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시인과 함께읽는 사기(史記)
민심을 얻고도 천명을 기다려야楚 장왕의 야망
이흔 기자  |  xionmi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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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15  13:3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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問鼎小大輕重 문정소대경중 (문정경중)
솥(천자의 상징인 나라의 보물)의 크기와 무게를 묻다 (초세가)
초 장왕이 중원에서 이민족을 몰아낸 후 천자의 자리를 탐냈다는 고사

대붕(大鵬)의 날갯짓이 시작됐다. <장자>는 이 새를 가리켜 ‘회오리바람을 타고 하늘 위로 구만리나 올라가 여섯 달을 날고서야 비로소 쉰다’고 묘사한 바 있다. 초나라 장왕의 극적인 등장이 바로 붕의 비상을 연상케 했다. 첫 3년 동안 국사를 돌보지 않은 채 천하의 미녀들과 술독에 빠져 지낸 것은 암중모색의 방편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날개를 펴자 중국 천하는 일대 파란을 맞게 된다.

장왕은 그동안 멋대로 중원을 유린하던 이민족(戎族)들을 정벌했다. 이후 20여년에 걸쳐 진(陳)을 정벌하고 정(鄭)을 쳤으며, 진(晉)을 물리치고 송(宋)을 굴복시켰다. 춘추시대 마지막 패자인 초 장왕의 일대기는 한편의 완벽한 드라마였다.

초나라 군사들이 맨 먼저 이민족들을 정벌했을 때, 장왕은 곧바로 귀국하지 않고 군대를 거느린 채 주나라 천자의 도성 가까이 머물며 세를 과시했다. 감히 천자의 권위를 시험하려 했던 것 같다. 과연 허약한 천자로서는 불안을 감출 수 없었다.

천자인 주 정왕(定王)은 초 장왕을 치하하고 위로한다는 명분으로 대부 왕손만을 초군의 영채에 보냈다. 실인즉 혈기 넘치는 초 장왕을 달래어 돌아가게 하려는 것이었다.

왕손만이 찾아오자 초 장왕은 넌지시 속내를 드러냈다.

“주나라에는 청동으로 만든 솥이 있다는데, 대체 얼마나 무겁습니까. 얼마나 큰가요?”

청동으로 만든 솥이라면 구정(九鼎)을 이르는 것이다. 그것은 멀리 하(夏)나라 시조인 우 임금이 전국을 아홉 주로 편성하면서 각 주의 제후들에게 청동과 금속들을 모아 보내게 하여 만든 아홉 개의 솥이었다. 아홉 개의 솥은 아홉 개 지방, 곧 하나로 모으면 한 나라가 되는 중국 전체를 상징하는 것이었고, 그것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하늘 아래 천자밖에 없었다.

무장한 군대를 거느리고 있는 제후가 구정의 무게를 묻다니. 그것은 감히 천자의 자리를 탐하는 흑심을 드러낸 것이 아닌가. 왕손만이 대꾸했다.

“그 무게는 덕행의 무게에 달려있지, 솥 자체에 달려있는 것이 아닙니다(在德不在鼎).”

장왕은 비웃었다.

“흥, 솥이 아무리 무겁다 해도 내가 마음만 먹으면 그대는 솥을 지켜내지 못할 것이오. 만에 하나 그 솥이 아니라 해도 초나라가 창칼을 녹인다면 그깟 구정 하나 못 만들겠소?”

젊은 제후의 오만이었다. 왕손만이 고개를 조아리며 다시 한 번 침착하게 말했다.

“아, 군주께서는 잊으셨는지요. 옛날 순 임금과 하우(夏禹)가 융성할 때 주변의 국가들이 모두 조공을 바치러 왔고, 우왕 때 아홉 주의 제후들이 스스로 금속을 헌납하여 구정이 만들어졌습니다. 솥마다 각 나라의 기이한 그림들을 그려 넣어, 이로써 이 기이한 물건은 상서롭고도 두려운 물건임을 의미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라 걸왕이 혼란에 빠지자 구정은 은(殷)으로 넘어가 은나라가 6백년을 지속하였고, 은의 주왕이 포학하여 천명을 잃게 되자 구정은 주(周)나라로 넘어왔습니다. 실로 구정의 무게란, 세상에 덕이 행해지면 크기가 아무리 작더라도 무거워 옮겨갈 수 없고, 세상이 혼란하여 간사한 사람이 들끓으면 아무리 크더라도 가벼워지는 것입니다. 옛날 성왕(成王)이 왕실에 구정을 안치할 때, 대대로 30대에 걸쳐 7백년동안 나라가 지속될 것이라는 예언이 있었으니, 이것이 하늘의 뜻입니다. 지금 주 왕실의 덕정이 비록 미약하기는 하지만, 하늘의 뜻이 바뀌지는 않았습니다. 구정의 무게를 물으시는 것은 불가합니다.”

장왕은 왕손만을 돌려보내고 곧 군대를 정돈하여 초나라로 돌아갔다.


이야기 PLUS

초 장왕이 주나라에 와서 구정의 무게를 물은 일을 가리켜 문정경중(問鼎輕重)이라 한다.

나라의 보물인 구정은 곧 천자의 왕권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사기> ‘봉선서’에, 한(漢)나라 무제 때에 태사들이 천자에게 구정에 대해 설명한 대목이 나온다. “일찍이 태고적 제왕 복희씨가 신정(神鼎)을 하나 만드셨는데, 하나를 만드신 뜻은 천지만물이 통일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음에 황제(黃帝)께서는 보정 세 개를 만드셨습니다. 이는 천지인을 각각 상징하였습니다. 뒤에 하나라 우임금께서 아홉 개의 청동 보정을 만들었는데, 이는 전국 아홉 주에서 각기 금속을 바치게 하여 나라의 상징물로 만들었고, 가을에 제사를 지낼 때마다 송아지를 삶아 하늘에 제사지내는 데 사용하였습니다.”

일찍이 주나라의 무왕은 은나라의 기운이 다하고 천하의 소망이 그 자신에게로 기울었어도 감히 은을 정복하러 나서지 않고 신하로서의 도리를 지켰다. 은의 주왕이 왕자들을 살해할 지경에 이르러 은나라 왕족들은 스스로 구정을 가지고 주나라로 귀순해왔다. 그런 뒤에야 무왕은 천명(天命)이 이른 것을 알고 제후들을 규합하여 주왕을 몰아내고 새 나라를 선포했던 것이다. 무릇 왕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덕을 베풀어 민심을 얻어야 함을 뜻하고 있다.
황금을 가진 부자는 하룻밤에 금배지를 수백 개라도 찍어낼 수 있다. 그러나 그 중 하나라도 유권자들의 선택(민심)에 의해 선출된 증거를 갖지 않는다면 그 모두가 가짜다. 구정의 권위도 이를테면 그와 같은 것이다.

“구정의 크기와 무게는 얼마나 되오.”

젊은 초왕의 방자한 질문에 왕손만이 대답했다.

“구정의 무게는 덕행 여부에 달린 것이지 솥 자체에 달려있는 것이 아닙니다.”

丁明 : 시인 peacepres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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