晉- 자객 서마의 자살

殺忠臣 棄君命 罪一也 살충신 기군명 죄일야
충신을 죽여도 죄, 임금의 명령을 어겨도 죄로구나 (晉 世家)
충신인 조돈을 죽이라는 진 영공의 밀명을 받은 서예가 고민 끝에 스스로 자결하며

진(晉)나라 영공(靈公)은 사치스럽고 잔인한 군주였다. 아직 어린 아기일 때 군주가 되었기 때문일까. 행동이 제멋대로였다.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취하며, 혹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으면 성질을 내어 아랫사람을 함부로 벌주고 죽이기까지 했다.

집의 담장에 조각을 하고 채색하여 멋을 부렸는데, 이를 위해 많은 세금을 거둬들였다. 또 누대에 올라가 놀다가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하여 탄환을 쏘면서 사람들이 피하는 것을 재미있어 했다.

어느 날 국가의 상경인 조돈(趙盾)과 사회(士會)가 조정에 있다가 한 여인이 슬피 울면서 삼태기를 머리에 이고 나가는 광경을 보았다. 이상해서 다가가 보니 삼태기 밖으로 사람의 손이 삐져나와 있었다. 사연을 물은즉 여인은 궁중 요리사의 아내라고 했다. 영공이 곰발바닥을 삶아오게 했는데, 요리사가 그것을 가져갔을 때 곰발바닥은 아직 덜 익혀져 있었다. 그러자 영공은 화를 내며 요리사를 죽인 뒤 그의 아내에게 시신을 이고 나가게 했던 것이다.

조돈과 사회는 영공에게 이러한 행동을 고치도록 간하였다. 영공은 ‘내 잘못을 알고 있으니, 고치도록 하겠소’라고 대답하였으나 여전히 악행을 고치지 않았다. 조돈은 잔소리를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조돈을 젊은 영공은 어려워하면서도 귀찮게 여겼다.

잔소리가 귀찮아진 영공은 급기야 서마라는 무사를 은밀히 불러 조돈을 죽이라고 밀명을 내렸다. 서마가 이른 새벽 조돈의 집에 가보니 침실의 문은 닫혀있었지만 잠기지 않았고 집안은 단정하게 정돈돼 있었다. 침실 문을 열고 보니 돈이 조회에 나가기 위해 성장을 차려입고 시간이 되기를 기다리느라 의자에 앉아 선잠이 들어 있었다.

“이런 분을 죽여야 하다니” 서마는 문밖으로 나가 한숨을 쉬었다. 조돈은 일찍이 문공 시절부터 제후와 백성을 위해 성실히 일해 온 성인이었으며, 그의 깨끗한 마음은 백성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다. 반면 젊은 군주가 포학하다는 것 또한 온 세상이 다 알고 있는 터였다. 이런 군주의 명령으로 경건한 충신을 죽인다는 것은 일개 무인으로서도 가책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저처럼 공경스러움을 잊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백성의 주인이다(不忘恭敬 民之主也). 백성의 주인을 죽이는 일이야말로 불충이 아닌가.”

그렇다고 조돈을 살려두자니 제후의 명령을 어기게 되고 그 또한 불충한 일이었다.

”충신을 죽이는 것도 죄요, 왕의 명령을 어기는 것도 죄다. 어떻게 해도 죄를 면할 수 없겠구나(殺忠臣 棄君命 罪一也).”

서마는 죄를 피하기 위하여 단 하나의 길을 택했다. 마루 위에서 문 앞의 회화나무에 스스로 돌진하여 머리를 부딪치고 죽었다.

영공은 이후에 또 조돈을 죽이려고 무사들을 매복시킨 뒤 돈을 청해 술을 마시게 했다. 영공은 돈을 취하게 하려고 술을 연거푸 따라주었다. 조돈이 아무 것도 모르고 술을 주는대로 받아 마시는데 갑자기 영공의 호위무사 한 사람이 끼어들며 말했다.

“신하가 임금의 연회에서 석 잔 이상을 마시는 것은 예가 아닙니다.”

그는 조돈의 술잔을 가로채 대신 마시고는 순을 마루 아래로 내려서게 한 뒤 데리고 나갔다. 뜻밖의 상황에 매복자들은 떠나가는 순을 잡으려고 맹견을 풀어놓았다. 무사는 달려드는 개들을 막아서서 때려죽였다. 조돈은 그제야 위험을 알아챘다. 곧이어 매복했던 자객들이 무기를 들고 달려들었다. 무사가 다시 그들을 물리쳐 조돈을 구했다.

“그대는 누구인데 군주의 뜻을 어기고 나를 구해주는가.”

돈이 어리둥절하여 묻자 이 정체 모를 무사가 말했다.

“저는 수산(首山)의 뽕나무 아래서 굶주려 죽어가던 그 사람입니다.”

그는 조돈을 안전한 곳까지 안내한 뒤 이름도 밝히지 않고 떠나갔다. 그 또한 영공의 무사로서 주군을 배신했으니 도망자가 되었다.

조돈은 그제야 시미명(示眯明)이란 이름을 기억해냈다. 수산은 조돈이 자주 사냥하러 나가던 곳이다. 언젠가 사냥을 하다가 예상이란 곳에서 쉬게 되었는데, 뽕나무 아래 한 사내가 사흘을 굶고 기진하여 쓰러져 있었다. 조돈이 먹을 것을 주자 그 사람은 절반을 먹고 나머지를 남겨두었다. 조돈이 그 이유를 묻자 사내는 “벼슬을 얻으려고 고향을 떠난 지 3년이 되어 돌아왔는데, 어머니가 잘 계신지도 모릅니다. 이제 집이 가까우니 어머니를 찾으면 드리려고 남기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조돈은 그에게 음식을 다 먹으라고 한 뒤 그의 어머니를 위하여 밥과 고기를 소쿠리에 담아 주머니에 넣어 주었다. 사내의 이름이 시미명이었다. 뒤에 입신하여 영공을 호위하는 무사로 있다가 오늘 조돈이 죽게 된 것을 알고 구해주어 은혜를 갚은 것이다.

이야기 PLUS

진 문공이 죽은 뒤 아들 양공은 진(秦)과 불화하여 보복 전쟁을 거듭한 끝에 제후가 된지 7년 만에 죽었다. 그의 어린 아들 영공이 뒤를 이었는데, 철없고 포악하여 마침내 선군들이 믿고 의지하던 충신들을 죽이기에 이른 것이다. 일찍이 은나라의 명신 이윤(伊尹)은 ‘젖먹이로서 제위에 오른 군주’를 삼세사군(三歲社君)이라 일렀다. 성인이 되기도 전에 기업을 물려받아 그룹 총수가 되는 그룹 후계자들 가운데는 종종 철없는 황태자의 태도로 경영을 전횡하여 세간의 손가락질을 받는 이들이 적지 않다. 오만과 객기가 그 유치하고 방자한 행동의 원인이다.
 

이른 새벽 조돈은 조회에 나가기 위해 옷을 차려입은 채 시간이 되기를 기다리며 선잠이 들어 있었다.

“저런 충신을 죽일 수는 없다.”

서마는 스스로 나무에 머리를 부딪쳐 자살하였다.

丁明 : 시인 peacepress@daum.net

저작권자 © 보험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