晉 문공 중이(2)

天之所啓 人不及也 천지소계 인불급야
하늘이 이끄는 바는(돕는 자는) 사람이 막을 수 없다. (晉本紀)
정나라 문공에게 대부 숙첨이, 중이는 하늘이 돕는 사람이니 홀대하지 말라

진(晉) 공자 중이가 떠나기를 거절하자 부인 강씨는 중이의 선비들과 모의하고 그날 밤 술상을 한껏 차려냈다. 중이는 독한 술에 취해 부인의 무릎에 쓰러졌다. 부인은 곧 밖으로 나가 중이의 사람들을 데려왔다. 구범이 장정들을 데리고 들어와 주군을 어깨에 떠메고 나갔다. 미리 준비해둔 수레와 일찌감치 짐을 꾸린 진나라 사람들이 조용히 밤길을 떠났다.

제나라 서울 임치를 벗어나서 일행은 쉬지 않고 걸었다. 주군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되돌아갈 수 없을 만큼 멀리 떠나야만 했다. 동틀 무렵이 되어서야 중이는 흔들리는 수레 안에서 정신이 들었다. “여기가 어디인가.” 그제야 수레가 멈추고 오랜 심복들이 수레 앞에 조아렸다. “제나라를 떠나 송나라로 가는 중입니다.”

“아니, 아무 데도 가지 않겠다고 내가 말하지 않았는가. 지금 누구의 명령으로 길을 나섰는가. 감히 나를 속였단 말인가.” 중이가 대노하여 펄펄 뛰었다. 실로 그처럼 기운 넘치는 모습은 오랜만이었다. 외삼촌인 구범이 나서서 이제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구슬렸으나 중이는 화를 가라앉히지 못하고 수레에 실려 있던 창을 빼들었다. “당장 돌아갑시다. 지금 말머리를 돌리지 않으면 이 창으로 찔러 죽일 것이오.”

구범이 몸을 내맡기며 말했다. “저를 죽이시어 주군의 뜻을 이루실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저의 바램이옵니다(殺臣成子 偃之願也).” 그제야 중이는 창을 바닥에 꽂으며 말했다. “좋아. 이렇게 떠나서 고생만 하고 아무 것도 성공하지 못한다면 외삼촌의 살을 씹어 먹고 말겠어.” 반승낙이다. 구범은 설핏 미소를 띠며 말했다. “만약 일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저의 늙은 몸은 너무 비리고 상했으니 드시기에 적당치 않을 것이옵니다.”

일행은 전진하여 송나라로 향했다. 제 환공 이후 아직 중원의 패자가 나오지 않은 터에 송나라 양공이 스스로 패자를 자처하고 있었다. 가는 길에 조(曺)나라를 지났는데, 조나라 제후 공공(共公)은 예절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중이를 그저 평범한 손님으로 대했을 뿐 아니라 중이가 목욕할 때 발 뒤에서 몰래 벗은 몸을 엿보았다. 중이는 갈비뼈가 통뼈(모두 붙어서 하나로 되어 있는 뼈)라는 소문이 있었는데, 그만 호기심을 참지 못했던 것이다.

조나라 대부 희부기에게 부인이 충고했다. “공자 중이는 덕망이 높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 또한 현인들이니, 능히 진나라로 돌아가 제후가 될 것입니다. 오늘 이렇게 무례를 범했으니 장차 보복이 두렵습니다. 빨리 그에게 가서 호의를 베풀도록 하십시오.”

희부기는 급히 음식상을 잘 차려 중이에게 보냈다. 밥그릇 속에 귀한 옥구슬을 묻어두었는데, 중이는 음식만 먹고 옥구슬은 그릇과 함께 돌려보냈다.

그들은 조나라를 떠나 송으로 갔다. 송 양공은 중이를 제후의 예우로 맞아들였다. 송나라의 사마 공손고가 구범의 옛 친구였다. 잠시 쉬었을 때 공손고가 구범에게 말했다. “송나라는 사실 작은 나라요. 패자를 자처하지만 실제로는 국력이 약하니 큰 도움을 드리지 못할 것입니다.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힘이 있는 나라로 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중이 일행은 다시 길을 떠났다. 정(鄭)나라를 지나가는데, 정 문공(文公)은 중이를 홀대했다. 대부 숙첨이 간했다. “공자 중이는 반드시 제후자리에 오르게 될 사람이니, 앞일을 예상하여 그를 잘 대우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나 문공은 비웃으며 말했다. “요즘 망명한 공자들이 한둘이 아닌데, 어찌 그때마다 예로써 대한단 말이오.” 숙첨이 말했다. “그러나 중이는 다릅니다. 정 그러시다면 차라리 죽이기라도 하십시오. 이대로 떠나보내면 반드시 후환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문공은 그 말도 듣지 않았다.

중이는 초나라로 갔다. 초나라는 마침 성왕의 치세 아래 강대해지고 있었다. 성왕은 중이를 제후의 예로써 맞이하였다.

이야기 PLUS

중이가 망명객 신분으로 중원의 여러 나라를 배회할 때, 그를 어떻게 대해주었는가는 후일 그 나라의 운명을 가르는 보답과 응징으로 돌아온다. 일개 망명객인 중이를 융숭히 대접하고 보호한 제후들은 그가 진나라의 주인이 될 것을 어떻게 예상할 수 있었을까.

근거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당사자인 중이의 덕망이 높아 자기나라 백성들로부터 기대를 모으고 있다. 둘째, 현명하고 반듯한 신하들이 그를 옹위하고 있다. 셋째, 그가 떠나있는 동안 모국의 정치가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정나라 숙첨이 자기 군주에게 중이를 잘 대접해야 한다고 주장한 이유나, 초나라 성왕이 중이를 존중한 이유도 똑같다. 숙첨은 문공에게 “신이 듣건대 하늘이 돕는 자는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臣聞 天之所啓 人弗及也, 弗=不). 하늘이 돕는 공자를 어째서 예우하지 않습니까”라고 했다. 초나라 성왕도 부하장수 자옥(子玉)이 중이를 죽이자고 주장하자 “하늘이 그를 도와 진나라를 일으키려 하는데 누가 그것을 막겠는가(天將興之 誰能廢之)”라며 만류했다.

안목이 천박한 정 문공의 눈에 이미 백발성성한 중이는 미래가 없는 노인으로 보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중이의 시대는 이제야 바야흐로 동이 트는 참이었다. 똑같이 두 눈을 뜨고 있어도 보는 능력은 나 같은 것은 아니다.

“이곳을 지나는 망명객이 한둘이 아닌데, 어찌 다 예로써 대한단 말이오.” 문공의 말에 숙첨이 말했다. “중이는 다릅니다. 정 그러시다면 차라리 죽이기라도 하십시오.”

丁明 : 시인 peacepres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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