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보험 담합 행위 조사 임박…재보험 영업 환경 무지에서 비롯된 ‘촌극’

 

[보험매일=방영석 기자] 재보험사 코리안리와 손해보험업계의 항공보험 담합여부를 판가름할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원회의 개최 날짜가 다가오면서 손보업계의 속앓이가 깊어지고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관용 헬기보험은 지방자치단체 등 정부 기관이 보유‧운용하는 헬기의 사고 위험을 보장하는 보험으로 재보험사의 협의요율을 활용한 손보사들의 입찰을 통해 판매됐다.

공정위는 조사를 시작한 이후 특정 재보험사인 코리안리의 협의요율만을 사용한 손보사의 입찰 과정이 담합으로 판단될 수 있다는 입장을 현재까지 고수하고 있다.

국내 유일 재보험사인 코리안리가 시장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독점 시장을 구축했으며 손보사들 또한 높은 수준의 보험료를 제시함으로써 국민 혈세를 부당하게 착복했다는 논리다.

실제로 1999년 이후 관용 헬기 등의 사업에 입찰해온 손보사들이 모두 코리안리에 의뢰해 받은 보험요율에 기초해 동일한 보험료를 제시해왔다.  

공정위가 이미 손보사와 코리안리 사이에 담합이 있었다고 판단하고 대규모 과징금을 부과할 것이란 소문까지 퍼지면서 손보업계는 흉흉한 연말을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공정위의 주장은 검증된 위험률 아래에서 보험료를 산출할 때만 상품을 판매할 수 있는 재보험 산업의 기본 조건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이해하기 어렵다.

공정위가 요율산출을 위한 기초통계 자료가 많지 않고 시장 규모가 크지 않아 제공되는 요율이 한정된 보험산업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불만이 업계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관용 헬기보험의 경우 매출 규모가 건당 30~40억 규모에 불과하다. 상위 손보사의 매출 규모가 수십조에 달하는 상황에서 수익 창출을 위해 코리안리와 헬기보험 시장에서 적극적으로 경쟁한 타 재보험사는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특히 일부 외국계 재보험사가 제시한 요율 역시 해당 요율에 대한 국내 손보사들의 낮은 신뢰도로 인해 코리안리와의 시장경쟁에서 선택받지 못했다.

해외 재보험사가 수익성을 이유로 요율 산출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부득이 코리안리의 요율을 사용했던 손보사들은 졸지에 담합사의 낙인이 찍히고 거액의 과징금을 물어낼 위기에 처했다.

손보사들이 복수의 재보험사가 요율을 제공하지 않는 물건이 많은 재보험시장에서 동일 판단요율을 사용한 것은 담합이 아니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 이유다.

특히 손보업계는 금융적폐 청산을 앞세워 무혐의로 조사가 끝난 사안을 재차 꺼내들어 칼을 휘두르는 공정위의 광폭 행보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공정위는 이미 2001년 코리안리의 헬기보험 보험요율과 관련해 독점적 지위 남용이라며 5개월간 조사에 착수한 바 있다. 

당시에도 공정위는 ‘국가기관의 입찰 또는 수의계약에 대한 업계 동일요율 사용은 부당행위’라고 주장했으나 코리안리와 손보사 사이의 담합 여부를 밝히지 못한 채 무혐의로 결론지었다.

손보업계 일각에서 경제민주화를 강조해온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촛불민심을 배경으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정책 코드에 맞춰, 대기업이 많은 손보사 ‘길들이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이유다.

공정위는 법적으로 실태조사와 자료제출 요구할 수 있으며 불공정 거래 행위를 규제할 권한이 있다. 건전한 경제 질서 정립을 위해 담합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공정위의 의도 자체는 나무랄 구석이 없다.

그러나 공정위의 조사로 손보사들과 코리안리는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졸지에 잠재적인 담합 보험사의 꼬리표를 달았다. 10년 전 공정위 스스로 담합이 아니라고 확인해 줬기에 재보험 요율 산정 및 입찰 절차를 동일하게 유지했던 탓이다.

무엇보다 공정위는 이번 조사 과정에서 손보업계가 이미 스스로의 역량에 따라 얼마든지 ‘판단요율’을 자의적으로 설정해 보험 물건을 인수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손보사들의 판단요율 사용 사례가 적은 이유는 손보사 스스로 요율을 산출하고 리스크를 분산시킬 역량과 자신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달 25일 조사 대상으로 거론된 손보업계와 코리안리는 공정위 앞에서 각자의 변호인단을 앞세워 그들의 결백을 ‘다시’ 스스로 밝혀야 한다.

부디 공정위가 ‘금융적폐 청산’이라는 대의에 사로잡혀 국내 손보업계의 재보험 산업 근간을 흔드는 무리수를 두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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