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망한 죽음

一雄斃一雄興 歌舞變刀兵 일웅폐일웅흥 가무변도병
한 영웅 쓰러지니 또 한 영웅 일어난다. 음악소리는 칼소리로 변하는구나 (中國 古詩)
송 상공이 위나라 주우의 꾐에 빠져 정나라 공격을 시작할 때 농부들이 부른 노래

송(宋)나라는 은(殷)이 망했을 때 주(周)왕이 은나라 후손들을 위하여 세워준 나라다. 은의 왕족이며 마지막까지 충신이었던 미자계가 송의 시조다. 여러 대가 이미 지나고 주나라 또한 기울어 동쪽으로 옮긴 뒤에 송나라 군주는 선공(宣公)이었다.

선공은 친동생 화(和)가 지혜롭고 신망이 두터웠으므로 그를 아꼈다. 선공이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태자 여이가 아직 어렸다. 선공이 말했다. “대대로 군주의 자리는 아버지가 죽으면 아들에게 물려주거나 형이 죽으면 동생이 물려받는 것이 관례다. 지금 태자는 너무 어려서 혼란한 시기에 나라를 이끌어갈 수가 없으니 과인은 화에게 나라를 물려주겠다.”

화가 거듭 사양했으나 선공은 물러서지 않고 마지막 유지로써 화에게 계승을 명했다. 화가 즉위했다. 목공(穆公)이다. 목공 또한 9년 뒤에 병으로 죽게 되자 대사마 공보가(孔父嘉)를 불러 일렀다. “나는 본래 왕이 될 사람이 아니었다. 선공이 태자가 너무 어려서 잠시 맡긴 것이니 이제 선공의 본래 태자인 여이에게 뒤를 잇게 하겠노라.”

공보가가 반대했다. “대신들은 모두 공자 풍(馮)을 세우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풍은 목공의 친아들이다. 그러나 목공은 간곡히 반대했다. “그리 해선 아니 되오. 왕위는 본래의 주인에게로 돌아가야 하오. 이것이 나의 유언이오.” 목공은 또 아들 풍을 불러 일렀다. “내가 죽은 뒤 태자 여이가 군주가 될 터이니, 너는 이 나라를 떠나거라. 정(鄭)나라로 가도록 해라.”

강력한 목공의 뜻에 따라 여이가 군주가 되고 풍은 정나라로 떠났다. 이 때 정나라의 군주는 장공이었다. 장공은 송 공자 풍을 환대했다.

여기까지였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사가 어디 늘 순탄하기만 한가.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는가 싶으면 곧 새로운 문제가 생긴다. 문제를 만드는 사람은 대개 정해져 있다. 그 문제아가 누구였나 하면, 바로 위나라에서 형 환공을 죽이고 권좌를 차지한 주우였다.

주우는 권력을 찬탈하는 데 도움을 준 정(鄭)나라 망명객 단에게 보답하기 위해 정나라를 쳐야만 했다. 그래서 송 상공을 유혹했다. “송나라 공자 풍이 정나라에 가 있으니 잠재적 위협입니다. 틀림없이 언젠가는 난을 일으킬 겁니다. 이런 화근은 일찌감치 뿌리를 뽑는 것이 좋은 것이오. 마침 우리가 정나라를 공격할 참이니 상공께서도 함께 하시지요.”

이제 스물 전후나 되어 정권을 물려받은 상공은 마침 외로웠다. 신하들은 선왕들을 그리워할 뿐, 상공을 감싸는 이가 적었다. 왕으로서의 위엄을 보일 필요도 있었다. 상공은 주우의 말을 받아들여 위나라 군대와 함께 정나라를 쳤다. 유유상종이라던가. 서형 정 장공을 반역하려는 정 공자 단 외에 이미 형을 죽이고 왕이 된 노 환공도 가세했다. 그러나 모두 오합지졸이었다. 송이나 노, 위나라는 군주에 대한 충성심이 약해 군대는 사기가 낮았다. 반면에 정 장공은 노련하고 강하며 현명했다. 주(周) 천자의 공격을 맞받아쳐 물리친 장공이다.

전쟁이 시작되자 들에서 일하던 농부들이 노래를 지어 불렀다.
 

“한 영웅이 스러지니 또 한 영웅이 일어난다. 춤과 노랫소리는 칼 부딪치는 군사들의 소리로 변하였구나(一雄斃一雄興 歌舞變刀兵).“

전쟁이란 한 번 시작하면 끝날 줄을 모른다. 어느 한쪽이 철저하게 망가지지 않는 한 공격과 보복은 끝없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적당히 발을 빼고 싶어도 뺄 수 없는 수렁과 같은 것이 전쟁이다. 정나라의 반격이 시작되고 위나라 주우는 일 년도 안 되어 자기 나라에서 제거되었다. 송나라는 강국 정나라를 상대로 고독한 전쟁을 치러야만 했다. 상공 집권 기간 9년 동안 11차례나 출병했다. 전쟁에 지친 민심은 상공을 원망하면서 정나라에 가 있는 공자 풍을 그리워했다. 재상 화독(華督)이, 이런 민심을 등에 업고 반란을 일으켰다. 대사마 공보가가 죽고 상공도 시해됐다. 공자 풍이 돌아와 군주가 됐다. 장공이다.

이야기 PLUS
화독이 상공을 제거한 사건은 얼핏 전쟁에 지친 백성들을 위하여 무능한 군주를 제거한 의거(義擧)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러려면 이 거사는 발단부터가 정당해야 한다.

그러나 이 반란의 직접적인 동기는 대사마 공보가를 죽이려는 것이었고, 그 이유는 공보가의 부인을 빼앗기 위해서였다. 공보가의 부인은 아름다운 여자였는데, 화독이 마침내 소문으로만 듣던 공 부인을 길에서 보고는 연정을 품게 되었다. 멀쩡한 대부의 부인을 손에 넣을 길이 없으므로 민심을 동원해 공보가를 죽이기로 했던 것이다.

마침 공보가가 국방을 맡아 군권(軍權)을 쥐고 있었으므로 계속되는 전란의 책임이 공보가에게 있다는 여론을 일으켜 전쟁에 지쳐있던 백성들의 분노를 자극했다. 여론이 무르익자 화독은 손수 군사를 이끌고 공보가를 습격하여 죽였다. 충격을 받은 상공이 대신들을 소집했지만 화독은 병을 핑계대고 가지 않았다. 오히려 상공이 공보가의 상가(喪家)에 문상을 가다가 기다리고 있던 장정들의 기습을 받고 죽었던 것이다.

화독에게 죽은 공보가의 자손은 후일 노나라에 정착한다. 송나라에서 유력한 대부였지만, 망명객으로서의 신분은 사(士)에 그쳤다. 그 후손 가운데서 공자(孔子)가 태어났다.

대사마 공보가의 부인이 예뻤다.
화독이 그 부인을 빼앗으려고 소문을 퍼뜨렸다.
“9년 동안 11번이나 전쟁을 치른 것이 한 공보가 때문이었소.”
화독은 공보가를 죽이고 군주 상공을 죽였다.

丁明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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