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은 제자린데 퇴직금 가치는 갈수록 떨어져 한숨만

[보험매일=이흔 기자] 지난해 금융권의 퇴직연금 수익률이 물가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희망퇴직은 늘어만 가는데 월급은 안 오르고, 물가까지 들썩이는 가운데 '최후의 보루'라 할 수 있는 연금수익률마저 형편없이 추락하고 있는 것이다.

작년 퇴직연금 수익률은 운용 수수료까지 고려하면 1%대 초중반에 불과하다. 퇴직 이후를 생각하면 한숨만 팍팍 나오는 수준이다.

퇴직 이후를 염두에 두고 차곡차곡 쌓아가는 알토란 같은 퇴직금의 가치가 점점 떨어지고 있는 셈이다.'

◇ 협약임금인상률 3.3%…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

물가는 오르는데 내 월급만 오르지 않고 있다.

협약임금인상률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19일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지난해 상시근로자 100인 이상이면서 노사협약으로 임금을 정하는 민간·공공사업장 1만738곳의 임금인상률은 3.3%였다.

이는 금융위기 무렵인 2009년(1.7%) 이후 7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또 관련 통계가 작성된 첫 해이자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발생 다음 해인 1998년(-2.7%)과 그 이듬해(2.1%)에 이어 연간 단위로는 네 번째로 낮다.

협약임금인상률은 100인 이상 기업 노사가 임금단체협약을 통해 합의한 임금인상률을 말한다.

그러나 연·월차 및 생리수당, 배당금 형식의 성과급 등이 포함되지 않아 근로자들에게 실제 지급되는 명목임금과는 차이가 있다.

임금인상률의 하락 추세는 올해도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

경제성장률 자체가 2%대 중반 정도에 그치고 미국의 새 정부 출범 및 기준금리 인상, 대통령 선거 등 국내외 불확실성이 확대돼 경기 침체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소비자물가까지 빠르게 상승하고 있어 근로자들이 느끼는 임금상승률은 명목상의 상승률보다 훨씬 낮다.

지난해까지 1%대 내외였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 1월 2.0%로 올랐다. 통계청은 소비자들의 체감물가 상승률은 3∼5%에 달할 것으로 분석했다.

임금이 5% 넘게 올라야 장을 볼 때 벌이가 늘었다고 느낄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임금이 인상돼도 오히려 줄었다고 체감할 수 밖에 없는 셈이다.

◇ 퇴직연금 수익률 1%대…물가상승 못 따라가

설상가상으로 노후 안전망인 퇴직연금 수익률은 바닥을 기고 있다.

은행연합회,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금융투자협회 등 각 협회에 공시된 자료를 보면 지난해 퇴직연금 수익률은 2%를 밑돌았다.

전체 가입액의 64%를 차지하는 확정급여형(DB)의 평균 수익률은 작년 한 해 1.81%에 불과했다. 손해보험업계가 2.0%로 가장 높고, 생명보험(1.98%), 증권(1.82%), 은행(1.44%) 등의 순이었다.

전체 가입액의 26%를 차지하는 퇴직연금 확정기여형(DC)의 수익률은 1.71%였다.

역시 손해보험업계가 2.38%로 가장 높았고, 생명보험(2.07%), 은행(1.73%), 증권(0.77%)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통상 0.4% 정도가 붙는 수수료를 제외하면 DB와 DC 가입자들이 얻는 연간 수익률은 1% 초중반에 불과한 셈이다.

규모별로는 은행이 전체의 절반이 넘는 56.9%(73조2천613억원)를 차지했다.

생명보험업계가 28%(36조141억원)로 뒤를 이었다. 손해보험업계는 7.8%(9조9천704억원), 증권업계는 7.3%(9조3천959억원) 수준이었다.

은행, 증권 등이 3년 동안 운용한 수익률도 변변치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지난 2014~2016년 각 금융사가 운용한 수익률은 DB를 기준으로 증권이 2.43%로 가장 높고, 손보 2.34%, 생보 2.17%, 은행 1.92%에 불과했다.

상당히 장기간 운용한 수익률도 높지 않다. 7년 간 수익률도 3~4%에 불과하다.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사실상 마이너스 수익률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2010년 3.0%, 2011년 4.0%, 2012년 2.2%, 2013년 1.3%, 2014년 1.3%, 2015년 0.7% 등이다.

◇ "낮은 연금수익률 생각하면 더 다녀야 하는데…"

수익률이 바닥권을 형성한 퇴직연금 실적표를 보고 있자면 퇴직을 미루고 더 일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고용시장이 잔뜩 움츠려있는 데다가 정년 이전에 퇴직하는 희망퇴직마저 정례화되는 추세다.

지난해 말과 올해 초에 걸쳐 4천명 넘는 은행원이 희망퇴직을 통해 직장을 떠났다.

가계대출 증가에 힘입어 장사를 잘한 은행들이 거액의 희망퇴직 비용을 댈 수 있었던 게 오히려 일자리를 떠나게 된 계기가 됐다.

KB국민은행의 경우 희망퇴직 비용만 8천억원을 썼고, KEB하나은행도 2천억원이 넘는 돈을 퇴직금으로 지불했다.

증권회사도 3년 사이에 업권의 13%에 해당하는 5천여명의 인원이 일자리를 떠났다.

주식을 사고파는 모바일거래가 급증하고 몸집을 불리기 위한 증권사 간 인수합병(M&A)이 잦아지면서 증권사 직원들의 일자리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경기불황 등으로 구인기업이 줄어 재취업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퇴직자들은 자영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지만 이 마저도 상황이 좋지 않다.

국세청이 발간한 2016년 국세통계연보를 보면 지난 2014년 자영업자는 하루 평균 3천명씩 늘어났다.

반면 지난해 기준으로 폐업한 개인사업자는 73만9천명이었다. 매일 2천명씩 사업을 접은 셈이다. 결국, 자영업에 뛰어든 사람 중 3분의 1만 살아남은 꼴이다.

좀 더 생활비가 저렴한 데다 소소한 일거리를 찾을 수 있는 지방으로 내려가는 사람들만 늘고 있다.

통계청 등에 따르면 지난 2015년 귀농 가구는 1만1천959가구로, 전년 대비 11.2%(1천201가구)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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