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적 분쟁해결 제도도 사태해결의 한 방법

[보험매일=위아람 기자] 지난 8일 삼성생명, 한화생명, 교보생명 등 ‘빅 3’가 자살보험금 미지급 관련 소명자료 제출일을 일주일 연기해달라고 요청하면서 금융감독원의 제재심의가 내년으로 미뤄지게 되었다.

자살보험금 논란은 최근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금융감독원과 ‘빅 3’의 힘겨루기 양상으로 번졌지만 사실 법적인 면에서는 이미 끝난 이야기다.

대법원은 ‘소멸 시효 2년이 지난 자살보험금은 지급할 필요가 없다’고 수차례 확정 판결을 내렸다. 보험사로서는 배임을 이유로 자살보험금 미지급 입장을 고수하는 것이 합법적인 모양새다.

더구나 문제의 뿌리를 파고들면, 애초에 면책 대상인 자살보험금이 이런 논란으로 번졌느냐는 의문에 닿게 된다.

‘계약의 책임개시일로부터 2년이 지난 이후 자살한 경우 보험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의 재해사망특약 약관을 승인한 책임은 금감원에 있다.

2001년 처음 잘못된 약관을 적용한 상품이 나온 후 2005년에 이미 자살보험금을 둘러싼 분쟁이 금감원 산하 분쟁조정위원회에 접수되었다. 그런데도 금감원이 본격적으로 자살 보험금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2013년 8월 ING생명 종합 검사 후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약관 초반부에 있는 자살보험금 관련 조항 오류를 금감원이 잡아내지 못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왜 문제가 방치된 것인지 지금에 와서는 이에 대한 사실관계를 따지기 힘들다”고 말할 정도다.

자살보험금 논란은 이미 법적인 문제라기보다는 감정의 문제가 되었다. 더구나 자살보험금 논란의 중요한 이해당사자인 계약자가 빠진 상태에서 벌어지는 갈등이다.

계약자들은 2005년부터 줄기차게 보험금 지급을 요구하며 보험사와 금감원의 문을 두드렸고 오랜 소송 끝에 확정 판결도 받아냈다. 그럼에도 여전히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고 2,000억원에 가까운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을 지급하느냐 마느냐는 여전히 문제의 중심에 있다.

한국에서는 생소하지만 미국에는 ADR(대안적 분쟁해결 제도)이라는 것이 있다. ADR은 법적인 해결 외에 분쟁 당사자 간 해결을 촉진하는 제도를 말한다.

자살보험금 논란처럼 법적인 해결은 됐지만 여전히 이해당사자 간 분쟁이 계속되고 있는 사항에는 ADR 기법을 이용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조정이 진행되기 전에 이해당사자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인데 이 갈등에서는 중요한 이해당사자인 계약자가 빠져 있다.

계약자가 보험사와 상품 계약을 했을 당시에는 당연히 약관에 따라 보험금이 지급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계약자(국민)가 보험사와 보험상품에 대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신뢰가 2,000억원에 가까운 금액만큼 깨져버리고 말았다.

대안적 분쟁해결 제도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이해관계자 간의 소통을 통한 문제 해결이다. 각자의 이해관계를 알고 상대와 자신의 원하는 것을 비교해서 얻을 것은 얻고 내줄 것은 내주는 지혜다.

신뢰는 법적인 해결로는 풀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더군다나 기관이나 단체, 대다수의 계약자가 얽혀 있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보험사는 자살보험금 미지급 건이 결국 계약자와의 신뢰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또한 금감원은 영업정지와 같은 강력한 제재는 국민 불편을 초래하는 강대 강 대결의 연장일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계약자 입장에서는 하루 빨리 계약 당시 약관에 따라 보험금이 지급되는 것을 원할 뿐 금감원과 보험사 간 줄다리기를 언론을 통해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보험사가 강력한 제재를 받아 영업에 차질이 생긴다 해서 사라진 계약자의 신뢰관계가 되살아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오래된 지혜로 돌아갈 때다.

저작권자 © 보험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