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매일=이찬희 기자] 보험사들이 가입자들에게 CD롬이나 USB 메모리 형태로 약관을 제공하고 있으나, 수십 가지 상품의 약관을 무차별적으로 수록해 오히려 소비자들에게 불편을 주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금융소비자원은 "현행 CD 약관은 가입자들의 편의를 무시한 채 경비 절감만을 위해 제작해 교부하고 있다"며 "조속히 CD 약관의 식별화 작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28일 주장했다.

금융소비자원에 따르면 보험 CD 약관은 2002년 금융감독원이 효력을 인정하면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컴퓨터에 CD롬 드라이브가 사라지는 추세라 USB 메모리를 이용한 약관도 사용된다. 

당시 금감원은 CD 약관을 허용하면서 "가입한 보험약관에 해당 코드를 부여해 계약자가 CD 약관을 통해 가입한 계약 내용을 용이하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가입하지 않은 다른 약관과는 식별을 명확히 하는 것을 조건으로 인정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금소원은 대부분의 보험사가 이 조건을 이행하지 않고, 한 장의 CD 약관에 판매하는 모든 보험상품을 수록해 무차별적으로 공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소원은 "가입자들은 보험에 청약할 때는 약관 내용을 검색하기보다는 청약서의 '약관수령란'에 사인하기 급급하다"며 "나중에라도 시간을 내 컴퓨터에서 약관을 검색해 보면 황당하게도 가입한 보험사의 모든 상품약관이 나열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주계약과 특약을 더해 적게는 수십 가지부터 많게는 100∼200가지의 약관이 함께 수록돼 있는데, 이 가운데 가입자가 가입한 약관이 어느 것이라는 표시도 없다"고 덧붙였다.

가입자들은 그제서야 보험증권을 꺼내 주계약과 특약 명칭을 일일이 확인해 검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보험사들이 인쇄 약관이 아닌 CD 약관을 공급하는 것은 경비를 절감하려는 차원에서다.

상품 종류별로 인쇄 약관을 각각 제작하기보다 한 장의 CD에 모든 상품의 약관을 수록하면 제작 경비를 줄일 수 있고, 착오발송의 위험도 막을 수 있다.

금소원은 보험사들이 경비를 절감하고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불합리한 영업 관행으로 가입자들에게 불편함을 전가하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금소원은 소비자들에게 일일이 인쇄된 약관을 교부하는 것이 여의치 않다면 차선책으로 의무적으로 CD 약관에 식별부호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약관을 전달할 때 코드번호를 명확히 기재해 전달하고, 이 코드번호를 입력하면 가입자에게 필요한 약관이 즉시 보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 생보사에서는 이를 통해 소비자들이 가입한 약관만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오세헌 금소원 보험국장은 "우리나라처럼 가입자 편리성을 무시한 채 약관을 보험사 중심으로 제작해서 무성의하게 공급하는 나라는 없을 것"이라며 "보험사들은 CD 약관의 식별화를 조속 추진하고, 금융당국은 적극적으로 관련 조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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