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좁은 골목길. 길 한 쪽은 주차해 놓은 차들로 빼곡히 차 있고 길 나머지 여백은 차 한 대가 겨우 빠져 나갈 수 있는 공간만이 남아있었다.

좁은 사거리에서 어렵사리 우회전을 해 문제의 그 골목길로 진입하는 순간 맞은편에서 강렬한 전조등 불빛이 눈앞에서 희번득거렸다. 이미 반대편에서 승용차 한 대가 마주오고 있었던 것이다. 스치기만 해도 수리비로 연봉이 날아간다는 독일산 승용차가. 전조등은 ‘내가 먼저 들어왔으니 네가 빼!’를 반복하고 있었다.

하는 수없이 왜가리처럼 모가지를 빼고 뒤쪽을 노려보며 후진하는데 기어이 일은 벌어졌다. 후진하며 주차해 놓은 차량 앞 범퍼를 들이받은 것이다. 말이 받은 것이지 그냥 대고 슬쩍 미는 수준이랄까. 시속 5킬로미터 안 되는 속도로, 아니 돌 지난 아이 보행기 속도로 후진하며 부딪쳤으니 '미는 수준'이라는 표현이 그다지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교체해야겠네. 보험처리 할거죠?”
언제 보고 달려왔는지 피해 승용차 차주는 자신의 앞 범퍼를 검지로 슥슥, 몇 번인가를 문질러 긁힌 상처를 기어이 찾아내고는 자판기에서 캔커피 빠져나오듯 두 문장을 단숨에 내뱉었다. 만일 범퍼 상처가 지렁이 정도 됐더라면 아마 승용차를 항공기로 교체해달라고 달려들었을지 모를 일이었다.

그리하여 수리비, 공임 등등 34만원. 차주의 염원대로 보험처리.
다이렉트보험사에 가입해 연간 보험료를 이 금액보다도 적게 내고 있는데 이런 사고가 났으니 이 보험사, 망했다.

어느 해 겨울, 지인들(보험사와 연관성이 높거나 보험이 생계인 인사)과의 술자리에서 보험사기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보험사고 처리 과정에서 생기는, 알만큼 아는, 자신들의 무용담 같은 보상처리 등속이 화제에 올랐고, 그냥 우스개로 넘어갈만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국회의원이었지, 아마.”
지인 한 사람이 말했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 대부분은 이 말소리가 들리자 또 시작이다,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뭐든 원리를 따져가며 장광설을 늘어놓기 일쑤였다. 그가 말을 시작하면 이곳이 술자리인지 세미나장인지 구분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고 그의 말이 딱히 틀린 것도 아니었지만 결론보다는 늘 서론이 길고, 때로는 서론 때문에 결론을 잊어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가 말을 시작하면 탄성과 긴장이 오갔다. 마침표가 찍히길 기다리며 소주잔을 몇 번이건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해야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말하는데……”
이번엔 그 답지 않게 뜸까지 들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뜸을 들이는 이유가 분명했을 거였다. 하지만 그가 말을 시작했을 때는 그것을 몰랐다. 심지어 말을 시작하기도 전에 자신의 말을 잊었나, 라는 의심까지 했으니까.

‘장광설’의 말을 요약하면 그 국회의원은 기획재정위원회 소속으로 상임위 활동에서 보험에 남다른 열의를 보여 왔다고 했다. 여기까지 들었을 때 우리는 그의 말에 별다른 감흥을 얻지 못했다.

‘장광설’은 그날따라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빠른 결론을 내려주었다. 그 국회의원이 이렇게 이야기했다는 거였다.

“우리나라 국민 모두를 잠재적 사기범으로 몰 순 없잖아. 그러니까 보험사가 사회공헌을 한다, 셈치고 보험금을 조금만 더 쓰면 우리 국민 모두가 행복해지지 않겠어?”
연말이었고, 그 해 겨울은 눈비가 많이 내렸던 한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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