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매일=방영석 기자]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늑장대응을 성토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말이다.

최근 정부와 보험업계는 이보다 한술 더 뜨고 있다. 지속적으로 위험성이 드러나고 있지만 여전히 지지부진한 전통시장 화재대책 이야기다. 소가 도망가려 하는 정황이 속속 나타나고 있지만 외양간을 고치기는커녕, 몇 마리의 소가 도망간 이후에도 여전히 망가진 외양간을 방치하고 있는 모양새다.

미로처럼 복잡한 골목에 노후화된 점포들이 밀집해 있는 전통시장은 화재 발생시 대형 참사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대표적인 재난위험지역이다.

실제로 전통시장은 최근 5년간 연평균 66.8건의 화재가 발생해 약 9억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지난 2005년에는 대구서문시장에서 186억원에 달하는 대형 화재가 발생하기도 했다. 한 달에 5번꼴로 불난리를 겪은 셈이다.

그러나 전통시장은 화재위험 심각성이 커지는 것에 비해 이에 대한 대비는 너무도 부족하다. 전체 전통시장 점포 중 화재보험 가입 비율은 20%에 불과하다. 일단 불이 나면 10개 점포 중 8개 점포는 속수무책이란 이야기다.

화재위험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전통시장을 바라보는 정부와 보험업계의 속내는 복잡하다. 영세한 상인이 대다수인 전통시장 입주업체들이 화재보험을 스스로 가입하는 비율이 낮지만 현실적으로 해결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전통시장 점포의 화재 보험료는 일반점포의 127%나 높게 책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보험사들은 노후되고 화재위험에 취약한 전통시장 점포들은 그만큼 보험료가 높을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전통시장 상인들을 위해 위험성이 뻔히 보이는 계약을 마냥 보험사가 손해를 보면서 인수할 경우 그 피해는 다른 선량한 고객들이 고스란히 부담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사태가 이렇다보니 정부와 금융당국도 전통시장에 ‘정책성 화재보험’ 도입 카드를 만지작 거린지 오래다. 지난해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이 직접 정책성 화재보험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힌데 이어 국정감사에서는 기획재정부에 이를 위한 예산 편성을 요구하는 등 ‘정책성 화재보험’ 도입 행보가 급물살을 타는 듯 보였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전통시장 상인뿐 아니라 국회와 금융당국까지 나섰지만, 국가 예산을 편성하는 기재부가 ‘예산 부족’을 이유로 난색을 표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전통시장 육성 특별법에 정책성 화재보험을 도입하는 방안을 고려하겠다고 밝힌 지 벌써 9개월이 지나고 있지만 ‘예산 부족’이란 벽에 가로막혀 여전히 진척 내용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그사이 작년 11월 경남 화개장터에서는 화재로 점포 80개중 절반이 넘는 41개가 타들어가며 1억9,000만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화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대다수 상인들과 피해자들이 어떤 고통을 받고 있는지는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국가 예산은 국민의 세금을 기반으로 철저한 계산을 거쳐 마련된다. 무분별한 예산낭비는 지양해야 하나 문제점이 계속해서 나타나는 사항을 몇 년째 ‘예산 부족’이란 말로 넘어가는 것은 그만큼 계산이 ‘철저하지 못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예산 부족’은 예고된 ‘재앙’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현 상황을 무마시킬 수 있을 만큼 '도깨비 방망이' 같은 존재가 아니다.

화재위험에 대한 대중들의 무관심도 이러한 문제점을 부추기고 있다. 의정부 아파트화재, 강화도 캠핑장 화재 등 한차례 화마가 휩쓸고 간 이후 화재안전에 대한 여론이 들끓었지만 잠시뿐이다. 국회가 특별법을 발의하고 누리꾼들이 정부의 미흡한 화재안전 대책을 연일 성토했던 것도 잠시 불이 사그라들며 화재보험 이슈도 어느덧 함께 꺼지고 있다.

‘꺼진 불도 다시보자’ 정부는 수십년간 화재안전을 강조하는데 이 표어를 사용해왔다. 너무나 익숙해져 무심코 넘어가는 구호만큼 정부와 보험업계, 대중은 전통시장 화재위험을 그저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방관하고 있다.

불은 꺼져도 화재안전에 대한 관심은 사그라들지 않아야 한다. 무관심속에서 구경하던 불이 강을 건너 우리의 현실이 되는 것은 한순간이다. ‘재수가 없어서’ 화마에 모든 것을 잃을 때가 되어서야 우리는 남들의 ‘불구경’을 성토하고 나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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