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합리한 요구와 지시는 금융당국과 금융업계 모두를 멍들게 한다

금감원의 위세는 대단하다. 금융기관에 대한 관리‧감독권한을 부여받고 있기 때문에 두려운 존재감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금융업계는 금감원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애쓴다.

따라서 금감원은 금융기관의 눈치보기 대상이다. 금감원에 찍히면 한마디로 ‘재미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로비의 대상이기도 하다.

‘금감원에 불려갔다’는 말을 업계의 입을 통해 자주 듣곤 한다. ‘불려갔다’는 말 속에 서열이 드러난다. 잘못을 저질러 꾸중을 들으러 가거나 어떤 일을 해명하러 높은 사람을 찾아 가는 모습이 연상된다.

보험업계 관계자들을 만나보면 금감원의 특정 정책을 두고 성토하다가도 이내 ‘이건 기사화하면 안됩니다’ 라거나, 말을 꺼내다가 ‘아차! 실수했구나’ 하면서 말문을 닫는 사례를 가끔씩 경험한다. 다분히 금감원을 의식해서다. 괜히 말 했다가 문제가 되면 자신이 다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깔려 있다. 금감원에 잘못보이면 좋을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누가 굳이 서열을 정해주지 않더라도 금감원은 확실한 갑이다. 그러나 그 위에 슈퍼 갑이 존재한다. 바로 금융위원회다.

금융위는 금감원의 정관변경·예산·결산 및 급여결정 승인 등을 지시·감독하는 정부행정기관이다. 한마디로 금융위가 금감원의 조직과 예산을 장악하고 있으니 목줄을 잡고 있는 격이다.

지난달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취임 후 처음으로 금감원을 찾아 금융당국이 현안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으로 ‘혼연일체’를 강조했다.

그런데 간부급 인사가 현안에 대해 대외적으로 다른 의견을 내면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방안을 검토키로 했다는 말이 전해지며 의구심을 남겼다.

이를 두고 금감원내에서는 금융위가 결정한 사안에 대해 금감원이 토를 달지 말라는 메시지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금융위가 추진하는 정책에 허점이 드러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금융위가 추진한 정책 때문에 금감원이 난처한 상황에 이르렀던 사례가 있다. 금융고객 지문정보 제거 권고는 금융위가 추진한 정책이었고 금감원이 감독기능을 수행했다. 금융기관에서는 업계 사정을 무시한 정책 추진이라고 불만을 토로했지만 원성은 정작 금융위가 아닌 금감원에게 돌아갔다.

또 최근 폐지된 소위 ‘빨간딱지제도’도 금융위 정책의 허점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빨간딱지란 민원이 많은 금융사의 지점 입구에 민원등급이 하위라는 ‘낙인’을 빨간색으로 써서 붙여놓는 규제다.

금융위는 민원 감소와 소비자 권익 보호라는 명분으로 이를 시행했지만 실제로는 이를 악용한 블랙컨슈머들에게 업계가 꼼짝없이 당했다.

업계에서는 현장을 모르는 금융당국의 헛발질이라는 아우성이 쏟아졌다. 그리고 업계의 비난은 정책을 내놓은 금융위보다 이를 수행한 금감원에 쏟아졌다.

금융위가 추진하는 정책에 대해 금감원은 어떤 방식을 통해서라도 수행해야 하고 총대는 주로 금감원이 멨다. 금감원은 업계를 다그치고, 업계는 현실적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윗선’의 지시니 볼멘소리를 내면서도 지시에 따라야만 했다.

금융위나 금감원은 존재하는 목적이 분명하다. 자신의 고유 업무영역이 구분되어 있는 만큼 서로 역할에 맞는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불합리한 요구와 지시는 금융당국과 금융업계 모두를 멍들게 한다. 아무리 금융소비자를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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