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未生)이 아니라 완생(完生)을 원한다

금융감독당국 인사에 칼바람이 몰아쳤다.
금감원 9명의 부원장보 중 대거 6명이 교체된다.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최근 금융감독원 임원 인사를 두고 말들이 많다.

새로운 승진 인사에 시선이 쏠리고 있지만 떠나야하는 이의 쓸쓸한 뒷모습에도 눈길을 뗄 수 없다.

이번에 자리를 비워주는 금감원 부원장보들은 모두 임기를 제대로 채우지 못하고 떠나게 됐다. 대부분 임원이 임기를 절반 이상을 남겨 둔 상태였고 일부 임원은 선임된 지 채 1년이 안 된 경우도 있다.

금감원 임원은 임기가 3년이다. 임기가 정해져 있다는 것은 적어도 재임기간 중 특별한 과오나 책임을 져야 할 사유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임기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온당하다.

퇴임 임원이 마땅히 갈 곳도 없다. 관피아 논란이 일면서 공직자윤리법이 강화돼 유관기관과 협회 취업이 3년간 제한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과거와 같이 ‘낙하산’을 기대할 수 있는 기회가 원천적으로 차단된 것이다.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옷을 벗는다는 건 결국 ‘윗선’의 뜻에 반하거나 미운털이 박혀 경질에 가까운 인사로 비칠 수 있다.

조직의 사기를 생각 한다면 인사에 신중을 기해야 함은 재고의 여지도 없다.

지난 연말  메리츠화재 인사가 다시금 떠오른다. 30명의 임원중 15명이 느닷없는 퇴임통보를 받았다. 사전 예고도 없는 갑작스런 통보에 해당 임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보험업계에서는 임원 절반이 퇴임하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상황을 목도하며 메리츠화재의 임원 대거 퇴임 인사를 두고 ‘대학살’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언제든지 나가라면 나가야 하는 신세라면 누가 임원 승진을 하려고 애쓰거나 달가워하겠는가.

실제로 임원승진 대상자가 승진을 꺼려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1년 전 하나금융지주 인사에서 일부 임원급 승진 대상 직원들이 승진을 거부했다. 10명에 가까운 하나금융 임원급 승진 대상 직원들이 승진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했고 지주사는 이를 받아들인 사례가 있다.

통상 보험사나 은행 임원 임기는 2년으로 중임이 가능한 것으로 돼 있다. 하지만 실적이 부진하면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하는데다 경영진이 바뀌면 임기가 남아 있더라도 인사 대상에 오르는 등 불안감이 클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일반 직원으로 남으면 정년을 채울 수 있는 만큼 오히려 더 실속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결국 승진 후 따라붙는 책임만 많다는 인식이 팽배해지며 명예보다는 실익을 추구하는 안정적 선택을 선호하는 경향으로 사고가 바뀌고 있다.

보험사 모 임원은 “임원이 되면 계약직으로 신분이 전환된다. 일반 직원들보다 고용안정성이 더 떨어진다”며 “일반 직원이 퇴직을 종용받으면 노조를 통해 조직적으로 반발 할 수도 있지만 임원들은 나가라면 조용히 자리를 비워주는 방법밖에 없다” 임원들이 처한 현실을 말해주고 있다.

금융권 임원들은 임기 중 불명예 퇴진하는 미생(未生)에 그치지 않고 주어진 임기를 채우고 떠나는 완생(完生)을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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